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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18. 2022

초4 아들 책가방 속 공책 하나

팀원들과 평가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나 어떡해?"


대뜸 어떡하냐고 묻는 동글이의 달뜬 목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쿵' 떨어졌다.


"왜? 무슨 일 있어? 다쳤니?"

"아니~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고..."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왜?"

"엄마, 가방에 물이 가득 찼어. 어떡하지? 등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물? 물이 왜?"

"물통이 새나 봐."

"뚜껑을 꽉 안 닫은 건 아니고?"

"닫았는데 샌 거야."

"엄마 지금 합기도 학원 쪽에 있어. 이쪽으로 오면 가방 받아줄게."


멀리서 동글이가 신발주머니를 휘휘 돌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 있어도 딱 내 아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음에도 내 아이만 있는 듯 빛이 났다. 아침에 배웅했던 아들인데 길에서 만나니 오랜만에 만난 듯 더 반갑다. 4시간 내내 서서 수업하느라 물에 젖은 솜뭉치 같던 몸뚱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엄마~~~~"


멀리서 양팔 벌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들이 신기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렸다. 와락 안겨오는 동글이에게서 책가방을 받아 들었다. 동글이는 합기도 학원으로, 나는 카페 앞 벤치에 앉았다.

 


동글이 말대로 가방 밑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방을 열고, 공책이며 필통들을 빼고 보니 가방 밑에 물이 한가득이다. 물통의 물을 비워 뚜껑을 꽉 채우고, 휴지로 물을 닦아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공책들을 말리려고 꺼내보니 역시 공책 밑이 다 젖어있다.



공책을 꺼내어 펼치다 눈에 딱 들어오는 것 하나 '글쓰기장'이다. 주말마다 담임선생님께서 10줄 이상 글쓰기 주제를 주신다. 글을 어떻게 썼는지 늘 궁금하지만 보여주지 않아서 읽어보지 못했다. 열 편이 넘는 글을 읽었다. 솔직한 아이의 글이 웃음 짓게 해 주었다. 그중 한 편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져 나왔다.


2022년 5월 15일(일요일)

제목 : 사랑하는 부모님 자랑하기

나는 4인 가족이다. 엄마, 아빠, 누나다.
서열을 정리하면 누나, 아빠, 엄마, 나다.
누나는 내가 놀이터, 다른 단지 가릴 것 없이 나타나 나를 지켜준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심심할 때 잘 놀아준다. 아빠는 딸 바보라는데 우리 아빠는 달랐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고민이 있거나 슬플 때 누나랑 같이 해결하고, 도와준다. 나는 막내 동글이. 나는 작곡가가 꿈이지만 천문학자도 되고 싶다. 처음엔 피아노가 쉽다 생각했는데 체르니 100을 들어가니 어려워졌다. 나는 나중에 지구가 멸망하면 이주할 수 있는 슈퍼지구를 연구하고 싶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동글이가 퀴즈를 냈다.


"아빠 잘 들어봐. 내가 문제를 낼 거야."

"그래."


아빠 눈에서는 꿀이 뚝뚝이다. 늦둥이 아들이 그렇게나 좋을까... 퇴근 후 옷 벗을 짬도 없이 아들 앞에 섰다.


"라면과 참기름이 싸웠어. 그런데 라면이 경찰서에 잡혀갔어. 왜 그랬을까?

"글쎄? 왜??"

"참기름이 고소해서..."

"하하하~"

"그런데 참기름이 다시 잡혀간 거야. 왜 그랬을까?"

"글쎄. 미끄러졌나?"

"아니? 라면이 불어서..."

"하하하~"

"경찰서에서 둘이 만났어. 왜 그랬을까?"

"경찰이 둘을 불렀겠지."

"아니? 고대기가 중재했어."

"하하하~"

"경찰서에서 싸우려던 라면과 참기름이 화해를 했어. 왜 그랬을까?"

"글쎄..."

"고대기가 말려서..."

"야~ 그거, 진짜 재밌다. 하하하~"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남편과 동글이는 찰떡궁합이다. 서로 누가 더 아재스럽나 경쟁을 하는가 보다. 방에 누워있다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함께 웃었다. 그러다가 낮에 읽은 동글이의 글이 생각났다.


"여보, 동글이가 글을 썼는데 우리 집 서열이 누나, 아빠, 엄마, 동글이래. 앵글이가 당신보다 서열이 더 높아."

"맞네 뭐."

"그리고, 아빠들은 딸바보라는데 우리 집은 아니라는데? 당신은 왜 딸 바보가 아니야? ㅎㅎㅎ"

"앵글이는... 나도 무서워."

"ㅎㅎㅎㅎ 나도 그래."


학교에서 돌아온 앵글이에게 동글이의 글을 읽어주었다. 앵글이도 '빵' 터졌다.


"음... 걔가 뭘 좀 아네. 나, 대한민국 고3!"


자기 전 동글이에게 물었다.


"동글아~ 그런데 우리 집에서 왜 누나가 서열 1위야?"

"누나가 다 이기잖아."


동글이 눈에도 보이나 보다. 역시 아이 눈은 속일 수가 없다.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가볍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집이 참 좋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하늘은 온통 찌푸렸다. 비가 오려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나 보다. 어릴 적 엄마가 이런 소리를 하면 귓등으로 흘렸던 게 못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비가 오기 전, 잔뜩 찌푸리고, 오는 둥 마는 둥 비가 내리는 날이면 몸이 땅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하다. 차라리 시원하게 내리면 보는 맛이라도 있지, 오늘 같은 날씨는 반갑지가 않다. 이럴 때 딱 필요한 것은, 따뜻한 블랙커피!


커피 한 잔 내려놓고 8시간 줌 교육받을 준비!

 

20차시~ 앞으로 18차시만 더!! 힘내자!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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