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월요일
매일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머리맡 핸드폰이 대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 5시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새 날의 기대보다는 단잠을 깨우는 진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만 뻗으면 멈출 수 있지만, 그조차 귀찮은 월요일이다. 평일의 시계는 고장이 난 듯 느려터져 속을 뒤집다가, 주말이면 제멋대로 흘러간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고 주리를 틀었다. 하지만 머리맡의 알람은 끊임없이 울어댔다.
‘5분? 아니, 10분?’
벌떡 일어나면 될 것을, 타협이 시작된다. 월요일 출근길을 생각하면 6시 전에 나서야 하지만,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후다닥 움직이면 15분이면 충분하지. 좋아, 20분!’
선심 쓰듯 20분 타이머를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망했다!’
치밀한 계산이 무색하게도, 단잠에 빠져 타이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듯 거친 비를 쏟아냈다. 4월에는 함박눈과 우박이 내리더니, 가을맞이 신고식은 또 이렇게 거창하다. 이 좁은 땅덩어리 한쪽에서는 가뭄, 다른 쪽에서는 수해로 연신 뉴스가 시끄럽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하필 비가 내리는 월요일. 잠결에 카디건을 걸치고, 잠든 가족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띠리링~ 현관 앞, 새벽 배송된 알비백 두 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하는 남편보다 반가운 선물이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찍찍이를 열 때마다 감사를 잊게 만든다. 팔 힘이 약한 나에게 찍찍이와의 씨름은 작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결국 씨름하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네가 시켰잖아. 남이 시켰으면 어쩔 뻔했어.’
작은 일에도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렇게 소소한 순간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일산으로 이사 온 후, 출근길은 장난이 아니었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조금 더 여유롭게 학령기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남편은 집부터 계약했고, 나는 매일 왕복 90km를 운전해야 했다. 아이와 남편은 행복했고, 나는 고되게 된 결정이었지만 괜찮았다. 출근 전까진.
장항 IC에서 행주산성까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풀리나 싶었는데, 가양대교라는 산이 기다린다. 성산대교까지 자유로는 전쟁터였다. 끼워주기란 절대 없을 것 같은 의지가 느껴지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 내부순환로 램프로 들어섰다. 앞으로 20km 더 가야 목적지다. 늑장을 부리다 6시를 넘기고 나니,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졌다.
‘아, 주여…!’
매일 반복되는 길, 매번 다른 변수와 씨름하며 나는 작은 성취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아침은 뭐로 먹을 거야?”
새벽배송으로 받은 식재료로 소고기 듬뿍 뭇국을 끓였다.
“아~ 몰라, 생각 없어!”
정작 등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왜 나만 분주한 걸까. 기다리다 못해 소리를 높였다.
“아~ 그래서 먹는다고 안 먹는다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괜스레 부아가 올랐다. 결국 아들은 야채주스 한 병을 마시고 나갔다.
“엄마, 커피??”
딸아이 한 마디에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좋지! 커피는 딸이 내려주는 게 제일 맛있지.”
보름달빵을 아침밥으로 선택한 딸아이의 모습에, 노력 없이 완벽한 아침이 완성된다.
‘딸아, 그거 아니? 네가 먹는 보름달도, 엄마도 반백살이다…’
이 짧은 순간 속에도, 나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담겨 있다.
10년 전, 유치원 원장이었던 나는 이제 전업주부다.
큰아이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아들은 현재의 나만 안다. 아들에게 엄마는 '동네 친구들과 커피타임을 즐기며 여유롭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챙기고, 나 없이 잠도 잘 수 있는 지금, 나는 잠시 내려놓았던 사회 속 나를 다시 찾아가려 한다.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때, 나의 자리가 있도록.
매일 반복되는 아침 속에서, 나는 작은 전쟁을 겪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한다. 그리고 조금씩,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