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서울에서 못 살겠어!
처음 일산으로 이사 왔을 땐 장보기조차 어려웠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낯설었고, 결국 살던 동네까지 가서 장을 보곤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알아가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십오 년.
이젠 이곳이 마치 고향 같다.
복잡한 서울보다 한적한 일산 끄트머리가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산에는 맛집도 많다.
운정까지 합쳐 생각해 보면, 쾌적하고 맛있으며 가격까지 착한 식당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입이 아프고 손이 아플 정도로 소개할 곳이 많은, 그런 동네다.
좋은 점은 열 손가락으로 다 꼽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굳이 단점을 찾자면 집값이 너무 안 오른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팔 생각이 없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도 오를 테고,
지금 사는 집이 불편하지 않으니 오르든 말든 크게 와닿지 않는다.
오래 한 동네에 살다 보니 형제보다 더 돈독한 친구들이 생겼다.
일 년에 서너 번 얼굴 보는 형제보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이 나를 더 잘 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이 더 애틋하다.
“내일 벙개 어때?”
한마디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이는 친구들.
허락이나 거절에도 마음 상하지 않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관계.
누구나 벙개를 제안할 수 있고,
누구든 거리낌 없이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참 좋다.
오전 11시에 만나 밤가시마을 ‘노노네’에서 가정식 밥상을 받았다.
여느 집 냉장고를 열면 있을 법한 재료로 차린 평범한 상차림이었지만,
쥔장의 정성이 더해져 따뜻한 맛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음식이 늦게 나왔지만,
맛이 좋아 기다림마저 즐거웠다.
식사를 마쳤지만 우리의 만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식당 문을 나서며 곧장 “디저트는 어디서 먹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첫 번째 후보는 밤가시마을 ‘달빛과자점’.
마들렌과 스콘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아쉽게도 월·화요일은 휴무였다.
두 번째로 향한 ‘아띠카페’ 역시 화요일 휴무.
결국 차로 돌아와 다음 장소를 고민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떠오른 곳 — ‘카페 몬타나’.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이곳은 레몬케이크가 일품이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고,
달지 않으면서도 풍미가 깊어 두세 개쯤은 거뜬히 먹을 수 있다.
앙버터 크로플은 바삭하고,
고구마무화과빵은 꾸덕하고 고소해 커피와 찰떡궁합이었다.
푸른 잔디와 정성스레 가꾼 조경이 마치 그림처럼 예쁜 곳.
조금 전 점심을 든든히 먹은 사람들이 맞나 싶게
케이크를 순식간에 비워내며 웃음소리가 퍼졌다.
서로의 일상을 자연스레 나누며 하하 웃을 수 있는 동네 친구들.
그들이 있어 오늘 하루가 행복했다.
굳이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 않아도,
내일 또 만나 어제보다 더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이 머무는 것,
그래서 나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날.
친구들과 함께여서 외로울 새 없는 오늘,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