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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

2025.03.17

by 나침반 Mar 17. 2025
찰스턴 (2025.03.12)찰스턴 (2025.03.12)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작년 연말을 서울에서 보내고 2학기가 시작하기 며칠 전에 학교로 돌아왔다. 개강 전에 시차를 극복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3월 중순에 있을 봄방학 계획도 세웠다.


이 기회에 애틀랜타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운전해서 가기에는 멀었던 도시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총 여행 기간이 5일을 넘기지 않고, 혼자서 이동해야 하니 하루에 운전하는 시간이 되도록 4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동선을 그려봤다.


서배너, 찰스턴, 애쉬빌 중 한 도시에서 3박 4일을 머무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내쉬빌-루이빌-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애쉬빌을 하루씩 거치는 내륙 코스로 정했다. 숙소도 바로 예약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모두 전액 환불이 가능한 숙소로 예약한 것이 문제였다.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지도와 ChatGPT를 기웃거리며 다른 동선을 구상했다.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쩌면 떠나기 전에 여행을 기대하며 상상하는 때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 바다와 산을 둘 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배너-찰스턴-애쉬빌을 들르는 일정으로 바꿨다. 이미 2월 말이었으니 이제는 숙소 예약을 취소할 수도 없었다. 틈틈이 세 도시에 있는 구경거리와 식당들을 지도에 표시하며 봄방학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3월 9일 저녁에 과제를 제출하고 드디어 3월 10일 오후에 서배너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4박 5일 동안 800마일을 운전해서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각 도시에서 산책하며 도심을 둘러본 시간은 4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남북전쟁의 첫 포성이 울렸던 섬터 요새를 다녀온 찰스턴에서의 일정이 유일한 예외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운전해야 하니 체력을 아껴야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잠들기 전까지 그다음 날의 일정을 그렸다. 그동안 저장했던 관광지와 식당 중에서 실제로 방문할 곳을 추려내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세 도시의 분위기를 기억 속에 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시 사이를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며 세상은 크고 넓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몸소 느낀 일주일이기도 했다.


매일 눈앞의 무언가에만 몰두하는 일상의 현장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오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학기가 끝나는 5월 초까지 그 사실을 애써 기억하며 붙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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