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라 소리 없이 고요하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덮이다니. 눈이 와서 새벽에 발이 아파 걸을 수 없다는 아버지는 찾아뵙지 못했다. 눈이 좀 녹으면 내일 가리라. 걱정으로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질퍽한 눈길은 내 마음 같았다. 도서관 입구에 도착하니 눈사람이 인사했다. 한창 눈싸움을 하고 있던 이들이 만들었으리. 큰 눈사람 옆에 작은 토끼 눈사람도 인사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순수하다고 했던가. 눈 청소를 마치고 지칠 만도 한데 동심에 푹 빠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걸 바라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대출할 책이 있어 2층으로 올라갔다. 찾던 책 두 권을 빌리고 리모델링한 깔끔해진 자료실을 둘러보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책에 리본을 묶은 사서 추천도서가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책이 뿜어내는 열기에 온몸이 달궈졌다.
창가 쪽으로 눈이 갔다. 2층에서 바라본 설경은 더 아름다웠다.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송이를 보니 아버지와 보냈던 그날이 생각났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아무도 오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같았던 운동장, 그 위에 누워보라던 아버지. 우리는 낯선 환경에 망설이며 얼음이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먼저 하얀 눈 위로 팔다리를 활짝 펴고 누웠다. 그 모습이 재미나 우리 형제는 하나 둘 따라 누웠다. 폭신한 눈이 따스하고 포근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운동장에 우리는 몸자국을 남겼다.
눈이 내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약해지고 작아져도 부모는 큰 사랑이다. 문득 한없이 커지는 추억 향기는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독심술을 지닌 듯 그때 그 시절 부모 마음이 그려진다. 자식을 향해 뿜었던 그 열기가 다시 나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