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과 고전 건축의 해석

서구의 포스트모던 역사주의와 우리의 한옥

by 홍진

도시가 물질적 고도화의 끝자락에 도달할 즈음, 사람들은 오히려 전통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다시 호출한다. 한옥이란 건축 유형이 21세기 초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현상은 단순한 복고적 취향의 부활이라기보다, 속도와 소비에 지친 도시 문명에 대한 존재론적 저항이자, 감각의 회복을 위한 건축적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은 시간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시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고 해석하며 구성해온 문화적 텍스트다. 오늘날 우리가 '한옥'이라 부르는 건축은 조선의 과거가 아닌, 지금 이곳의 도시성과 감성, 그리고 문화적 사유가 빚어낸 복합적 결과물이다. 사실 '한옥'의 건축적 양식도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전반적 건축형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한옥은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주거형식으로 왜곡된 인식으로 간주되어 도시에서 밀려났고, 대규모 신도시 개발과 아파트 공급의 흐름 속에서 급속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문화재청의 전통건축자산 보호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한옥마을 조성 프로젝트, 그리고 무엇보다 한옥이 지닌 물리적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한옥은 도시 속 문화자본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서울의 북촌과 서촌, 전주의 한옥마을, 안동의 한옥마을 등은 단순한 보존 구역이 아니라, 관광, 주거, 소비, 삶이 뒤섞인 복합적 상징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오늘날의 한옥은 조선시대의 생활양식이나 가족 구조, 자연관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기술과 감각, 현대의 주거성능이 통합된 공간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 바닥 난방, 방음, 단열, 친환경 설비는 물론 철골 구조와 유리 입면까지 도입되며, 전통적 외피 안에 현대적 기능이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진화는 과거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창작이며, 시대의 정체성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건축적 시도다.


물론 이런 건축적 시도는 여러 시행착오끝에 암묵적 합의와 방향이 결정된 것이 타당하다. 한옥에 대한 인식은 20세기 초반 일본 식민지시대 동안 구태의연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암묵적 의식속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었다. 더우기 해방이후 의식의 공백기간이었던 식민지 시대에 연구되고 체계적인 변화의 시기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이어들어온 산업주의적, 서구적 건축에 의해서 전근대적 건축 형식으로 낙인이 찍혀가고 있었다. 막연하게 우리 '전통'이라는 강력한 명분으로 보호해야할 전시 쇼룸안의 전시물로 다뤄지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주체적 건축양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시각은 일찌기 한옥 보전 또는 보존지역으로 규정된 안국동부터 북촌 일대의 한옥지역이 지정되었지만 주민들로 부터 환영받기 보다는 불편한 '전통가치'였을 뿐이었다. 이런 현실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80년대 말 일시적으로 한옥보존지역 해제시 벌어진 건축상황이었다. 순식간에 한옥들이 철거되고 다세대/다가구 벽돌주택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다.

너무 빠른 시간에 지역이 훼손되자 급하게 다시 한옥 권장의 다양한 제도들이 하나둘 마련되고,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을 박제된 그것에서, 생활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응용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현재'에 맞는 응용력이 오늘의 한옥을 다시 존속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한명 두명 한옥 전문 건축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태도들이 보인다. 한옥을 설계하는 오늘의 건축가들은 흥미롭게도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기하학과 합리성,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현대 건축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처마의 흐름이나 기와의 곡선, 마루의 깊이처럼 비이성적이고 감각적인 한옥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한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혼합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 이성과 감성 사이의 긴장을 품은 건축적 윤리의 표현이며, 삶의 양식과 문화적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들에게 한옥은 단지 복원되어야 할 유물이 아니라, 다시 살아 숨 쉬는 사유의 건축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이나 일본의 전통 재해석 방식과 비교될 수 있다. 영국의 찰스왕의 영지에 세워진 크리에 형제가 설계한 파운즈베리는 고전주의 도시의 질서와 비례, 시민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일본의 현대건축가 쿠마 겐고는 전통을 극단의 단순화와 비물질화의 방식으로 계승하며, 감각을 추상화하고 공간의 여백 속에 정체성을 부유시킨다. 반면 한국의 한옥은 감성적 장식성과 형태적 정체성을 유지한 채, 여전히 그 외피를 고집한다. 이는 전통의 재현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감성의 밀도’라는 독특한 미학적 감각을 지켜낸 결과이기도 하다.

한옥을 둘러싼 문화적 실험은 단지 양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꿈꾸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윤리적·철학적 물음으로 확장된다. 북촌의 전통 한옥이 외국인 관광객의 풍경이 되었고, 전주의 한옥마을이 전통과 상업이 혼합된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며, 양평과 가평의 고급 전원형 한옥이 중산층의 주거 이상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시간과 감각, 기억과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옥은 성공한 실험인가, 혹은 재현에 머문 문화적 소비에 불과한가. 이 물음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도시의 리듬과 삶의 윤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우리의 감수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처마 밑 그림자의 흔들림, 창호 사이 빛의 반사, 온돌에서 전해지는 감각의 온도, 마당을 중심으로 한 공간의 리듬은 도시가 잃어버린 공간적 윤리와 감각적 충만함을 다시 일깨운다.


오늘날의 한옥은 감각의 유산이며, 사유의 거처다. 그것은 고정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된 전통이며, 전통이 동시대의 감성과 기술, 윤리와 맞닿은 지점에서 살아나는 장소다. 건축은 단지 공간을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의 정체성을 조율하는 철학적 작업이기에, 한옥은 우리에게 ‘살 수 있는 공간’과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다시 마련해준다. 그리고 이런 21세기 한옥을 건축적으로 진지하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 개념이 서구식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적 맥락주의 시각이던, 역사 유물적 시각이던 다양한 건축적 논쟁이 필요하고 분석과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철학적 논쟁 또는 토론이 등장하고 정리되야만 시간을 건너뛰고 등장한 산업화된 모더니즘 건축의 서구적 시각을 우리의 시각으로 전환할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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