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에 가려진 천재성
해방직전 공업학교 츨신의 이희태 건축가는 한국 현대건축에서 종교건축의 정신성과 장소성을 섬세하게 재해석해 온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유학도 다녀온 적 없고 조선에 건축대학이 없던 시절 그의 교육 배경은 일천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건축의 면면을 보면 타고난 천재성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1925년 생으로 64년에 준공한 양화진 성당은 39살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에 걸친 건축과 증축한 혜화동 성당을 완성한 1970년은 45살 때다. 요즘 건축가들에 비하면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이었다.
혜화동에 위치한 상당과 양화진 절두산 성당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지만, 두 건물은 형태, 구성, 공간의 연출 방식, 그리고 종교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둘은 단순히 시간적 차이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장소의 기억과 맥락, 대상이 되는 공동체의 요구, 그리고 신학적 해석에 대한 건축가의 응답이 어떻게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먼저 혜화동 상당은 혜화동 가톨릭대학교의 캠퍼스 인근에 위치했다. 외형은 단순한 육면체 형태를 기반으로 하되, 내부의 공간은 빛으로 형성되는 공간 성격을 띠며 깊은 공간적 상징성을 띠는 구조로 발전한다. 외부는 부분적으로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중세 유럽 수도원 건축의 물성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콘크리트 마감과는 대비되는 따뜻하고 인내심 있는 질감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외형은 결코 평면적인 의미에서의 단순함이 아니다. 내부 공간 구성은 공간에 대한 심리적 레이어들이 구성되어 마치 하나의 시편이나 묵상과 같은 공간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자연광의 섬세한 제어는 혜화동 상당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다. 스태인즈 글라스를 통한 측창을 통한 빛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표정을 달리하고, 이 빛은 고요하게 공간의 질서를 드러내며 기도의 리듬을 만든다.
혜화동 상당에서 이희태는 ‘내면성’이라는 키워드를 따라간다. 외부와 단절된 듯 보이지만, 내부에 깊이 침잠할수록 인간의 존재적 고독과 신 앞에서의 고요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 성당은 보는 건축이라기보다 체험하는 건축이다. 그 안에서 사람은 말보다 더 깊은 침묵으로 신에게 다가서며, 그 침묵은 빛과 재료, 공간의 층위에 의해 지지된다. 특히 제대가 위치한 중심부는 전체 공간을 수렴시키는 구조를 갖는데, 이는 단지 시각적 중심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중력처럼 기능한다. 이 중심은 상징적 축이자, 실질적 전환점으로서 각 공간이 이곳을 향해 기울어 있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기능적 배치 이상의 종교적 은유를 띤다.
반면 양화진 절두산 성당은 혜화동 성당보다 더 외부로 열려 있으며, 장소성에 대한 응답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절두산이라는 장소는 한국 가톨릭의 순교 역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인접하며, 한강과 맞닿은 지리적 위치는 성지로서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희태는 이 프로젝트에서 장소의 기억을 어떻게 건축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혜화동 상당과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절두산 성당은 상징적 기념성과 지역적 기억, 그리고 공동체적 개방성을 동시에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절두산 성당은 기하학적으로 더 복잡하며, 입면의 구성에서도 훨씬 상징적이다. 특히 파사드는 수직적 상승감을 강조하며, 이는 순교의 정신을 하늘로 향하는 신앙의 몸짓으로 건축화한다. 외형은 명확한 형태보다 인상적 실루엣을 통해 전달되며, 이는 멀리서도 장소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벽체는 단단한 재료감과 수직적인 창문 배열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신념과 고통, 숭고함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내부로 들어가면 빛은 정면이 아니라 천장에서 수직적으로 떨어진다. 이 빛은 ‘위로부터의 계시’로 해석될 수 있으며, 혜화동 상당의 부드럽고 묵상적인 빛과 달리, 절두산 성당의 빛은 훨씬 더 직설적이고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공간 구성 역시 이곳에서는 더 드라마틱하다. 신도는 건축 공간을 관통하며 한층 높은 제대를 향해 올라가게 되고, 이 오름의 경험은 마치 하나의 의례처럼 감각된다. 동선은 직선적으로 보이지만, 각 지점마다 의미 있는 전환점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전체 공간이 단순한 통과가 아니라 성찰의 연속체로 기능한다. 이 성당의 공간은 순례자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며, 몸의 이동이 곧 신앙의 여정이 된다. 이 방식은 혜화동 상당의 내부화된 침묵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움직임과 리듬을 통해 존재를 구성해 나간다.
두 건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희태 건축가의 유연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건축적 응답력이다. 그는 같은 종교적 건축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각기 다른 공간적 신학을 구현한다. 혜화동 상당은 ‘침묵 속의 기도’를 위한 건축이라면, 절두산 성당은 ‘기억 속의 순례’를 위한 건축이다. 전자가 ‘내면적 응시’라면, 후자는 ‘장소적 숭고’이다. 전자가 물리적 폐쇄를 통해 정신적 개방을 도모한다면, 후자는 물리적 개방을 통해 영적 고양을 유도한다. 이 둘은 상호 모순적이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다. 이희태의 건축은 단일한 미학을 추구하기보다는, 맥락과 기억, 대상의 본질에 따라 그 형식과 언어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종교건축이 처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 공간은 단지 의례의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장소의 기억,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수용하는 복합적 장소가 되었다. 이희태는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어떤 장식적 수사나 상징적 기호에 의존하지 않고, 재료와 빛, 구조와 동선을 통해 신성성과 장소성을 설계한다. 이는 그의 건축이 단순한 시각적 인상에 머물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는 공간의 층위를 갖도록 만드는 핵심이다.
두 성당은 한국 현대건축에서 종교건축이 어떻게 다르게 사유되고 구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혜화동 상당은 비움과 침묵, 깊이의 건축이며, 절두산 성당은 기억과 상승, 공동체의 건축이다. 각각의 건물은 장소와 공동체, 종교적 의미를 고유하게 조율하며, 이희태라는 건축가가 어떻게 ‘신성함’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건축은 어느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으며, 그 대신 매번 장소와 시간, 그리고 인간의 내면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곧 건축이 단지 구축의 기술이 아니라 해석의 행위이자 실존적 응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결국 혜화동 상당과 절두산 성당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두 개의 답변이다. 그 질문은 바로 “신성함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 땅 위에 구현할 수 있는가?”이다. 전자는 그 질문에 대해 ‘고요히 머무는 공간’을 제안하며, 후자는 ‘기억과 순례의 제의적 공간’을 응답으로 내민다. 두 응답 모두 이희태의 건축 안에서 깊은 사유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형상화되었으며, 이는 한국 종교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탐구와 재능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미 30대부터 그의 작품에서 나차난 한국적 장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미학적 탐구다. 당시 김수근의 작품이 세계적 경향을 십년단위로 이동하면서 시도한 것에 비하면 초반부터 창의적 출발을 한 듯 하다. 아쉽게도 50대 증반에 사망해서 더 발전한, 진보된 결과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양화진 절두산 성당의 도면은 볼 수 없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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