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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모더니스트 건축

도전을 하라!! 도전의 DNA를 복구하라!

by 홍진


남산은 어릴 적 갈 수 있는 몇 곳 중의 한 곳이었다. 야외 음악당도 있었고, 식물원도 있었다. 그리고 책 읽으러 버스 타고 남신 도서관도 다녔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매력적인 도서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중심부 남산 자락에 자리한 남산도서관(구 남산 어린이회관)은 시대의 공기를 품은 드문 건축물이다. 어린이 회관을 비롯 처음 설계되었던 목적은 ‘어린이 문화의 중심지’였다. 정부에서 관여한 어깨동무라는 아이들 잡지를 보면 당시 박정희 정권 시절, 국가가 주도한 산업화와 근대화는 단지 경제나 기술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문화적 습관과 공간 경험까지 설계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는 ‘국가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호출되었고, 남산 어린이회관은 정치적 목적을 가장 건축적으로 드러낸 장치였다.


오늘날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이 건물은 단지 기능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형식, 그리고 공간 자체가 말하는 정치적·철학적 의미까지 재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수근과 김주업 외에도 고군 분투한 건축가들은 많았다. 그중 이해성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단지 기능을 수용한 공간을 넘어, 당시 한국 건축이 어떤 모더니즘적 사유에 동참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희귀한 예시이다.

그는 전통 건축양식이나 기념비주의적 표현을 지양하고, 기능과 구조, 공간 배치의 논리를 통해 질서를 표현한 합리주의적 건축가였다. 그의 건축은 조형의 화려함보다는 기하학적 모듈의 반복과 수평 슬래브의 명료한 배열을 통해 공간 속에 내재된 논리의 질서를 드러냈다. 이러한 건축적 태도는 1950~70년대 국제적으로 확산된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기계로서의 건축’ 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적은 것이 더 많다(Less is more)’라는 신념과도 깊은 맥락을 공유한다.

남산도서관의 건축 형식은 당시 서울 도심에서는 매우 이질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지닌다. 지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계단식 저층부와, 평지처럼 떠 있는 기층부등의 구조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이런 혁신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구조적 효율성과 시공의 현실성이라는 이해성의 실용주의 건축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국가가 요구하는 기능을 충족시키되, 거기에 정제된 미감을 입히는 방식으로 건축을 대했다. 이는 프랑스의 장 프루베(Jean Prouvé)가 보여준 금속 패널과 가변 구조를 통한 ‘보편적 건축’의 실험과도 유사한데, 남산도서관에 적용된 이동식 돔 역시 그러한 기계론적 미학의 일면을 보여준다. 프루베처럼 이해성도 반복과 최소 단위의 조합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자 했고, 그 반복 속에 숨은 질서와 논리가 건축의 주제를 이루었다.

남산도서관의 계단식 대지 배치는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 중 공공건축의 패턴과도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예컨대 일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Kisho Kurokawa)가 설계한 나고야 시의 어린이 과학관이나 초기 메타볼리즘 건축은, 도시 중심에서 미래적이고 유동적인 구조를 실현하려는 야심 찬 시도였다. 남산도서관 역시 모더니즘적 형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해석을 시도한 건축으로, 장소성과 근대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독특한 균형을 보여준다.

또한 대지의 경사를 그대로 수용하여 저층부는 땅에 스며들고, 상층부는 경관을 조망하는 부유하는 매스로 처리되었다. 이는 근대건축의 수직적·수평적 질서 사이의 긴장을 활용해 장소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담아내는 전략이었다. 그리드형 창호, 반복된 발코니, 그리고 상부의 원형 돔은 이질적인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능과 형태, 그리고 상징이 하나의 조형 언어로 엮인다.


이런 건축은 단지 조형의 완성도가 아니라, 건축이 말하려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에 더 큰 관심을 둔 결과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 주도적 건축은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상징 장치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에 대한 집단적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해성은 이 두 요소 사이에서 건축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정권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것을 반항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경계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를 고안해 낸 것이다.


당시 국영기관이나 공공설계단체는 정권의 비전을 공간화하는 설계 사령탑이었으며, 그 안에서 건축가는 ‘창작자’라기보다 ‘정책 실현자’로서의 역할이 더 두드러졌다. 그렇기에 이 건축물은 작가적 건축이 아니라 기획적 건축에 가깝다. 기능의 충족을 넘어서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공간을 통해 권력을 가시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물은 오늘날 오히려 ‘시대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건축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역설적 미학이 발견된다. 사실 노골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공공건축은 이런 정치적 속성이 존재한다.

다만 그런 선택이 전문적 결과에 대한 선택이 아닌 비전문적 식견으로 강요될 때 결과는 참혹해진다.


남산도서관이 건축적 가치를 지닌 이유는 이런 배경보다는 만들어진 성과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일한 미감보다는 복합적 충돌에서 비롯된 긴장감이 아름다움의 근거가 된다. 저층부의 계단형 매스는 주변 자연과의 유기적 연계를 보여주지만, 거 층 부는 오히려 부유하듯 도시와 분리되어 있다. 이 구조는 건축이 땅에 뿌리내리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향해 ‘떠오르려는’ 이중적 태도를 상징한다. 도시는 여전히 전통적이었고, 국가의 시선은 이미 미래로 달려 있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건축이 바로 이 남산도서관이다.

계획적 이면을 보면 건축이 보여주는 ‘분리와 계층’의 구조를 읽을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는 장소를 통해 드러난다”는 명제를 이 공간에 적용한다면, 남산도서관은 오히려 ‘장소 없음(placelessness)’의 구조에 더 가깝다. 외관상은 자연과 융화되지만, 내부의 평면 구성은 효율성과 감시, 수직적 동선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오히려 ‘머무름’보다는 ‘통과’와 ‘구분’이 강조된다. 공간의 서사보다 기능의 흐름, 사유보다 조작이 우선시 된 건축의 전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은 결코 무미건조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이 건축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지닌 ‘시간의 두께’ 때문이다. 과거의 정치, 기술, 상상력, 실험, 실패가 모두 복합적으로 겹쳐져 있고, 지금은 도서관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새로운 해석의 층위를 제공하고 있다.


남산도서관은 한국 건축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드물게 ‘당대의 의도와 현재의 의미’가 충돌하며 살아남은 건물이다. 그것은 국가의 욕망이 건축화된 장소였고, 오늘날은 시민의 기억과 일상이 깃드는 공간이 되었다. 공공 건축은 단지 기능의 완성이 아니라,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남산도서관은 그 그릇 안에 담긴 시대정신과 상처, 꿈과 오만함이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장소다. 우리는 이 건축을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석하고 사유해야 할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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