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의 부르탈리즘을 보여준 도전
서울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은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구적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대표작이자, 그가 건축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철학과 미학, 구조적 실험정신이 복합적으로 담긴 작업이다. 이 건축물은 단순히 한 시대의 기술적·양식적 반영에 그치지 않고, 당시 한국 사회가 지향하던 근대성과 국가적 이상을 실질적 공간으로 구체화한, 일종의 ‘공간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60~7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한 기하학적 부르탈리즘 양식을 한국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독창적으로 전유했는지를 고찰하는 데서 이 건축물의 진정한 미학적 가치는 드러난다.
건물은 노출콘크리트와 벽돌이라는 서로 다른 재료가 대조적으로 배치되며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이질감 없는 구성으로 감성적인 응축을 유도한다. 노출콘크리트는 통상적으로 거칠고 차가운 물성을 지닌 반면, 벽돌은 수공적 감성과 촉각적인 따스함을 제공한다. 김수근은 이 두 재료를 단순히 마감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감정의 층위를 조성하는 조형언어로 삼았다. 이러한 물성의 대비는 루이스 칸(Louis Kahn)의 ‘재료의 본질을 존중하라’는 철학과도 닮아 있으며, 칸이 강조했던 ‘형태는 기능을 넘어서 빛과 침묵의 구조다’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KIST 본관의 공간은 단순히 기능적 배치의 결과물이 아니라, 채광, 동선, 시야의 투과성, 위계적 높이 조절을 통해 공간적 체험이 감각적으로 설계된 사례이다.
사실 김수근은 시대적으로 매우 운이 좋은 건축가였다. 누구보다 이른 나이에 신생 독립국가의 많은 기회를 가졌고, 낭만주의자였다. 사실 부여박물관 논쟁 전에는 건축의
장소성에 깊게 고민한 흔적보다는 통상 30대들이 그렇듯 도전과 모험의 시기였다. 기회가 많았던 만큼 도전적 모험을 하던 시점에 이 건물을 디자인했다.
KIST 본관은 단순한 연구소나 행정 공간이 아니라, 이성과 낭만, 기술과 예술, 기능과 상징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복합적 실험공간이었다. 외부 매스는 격자형 평면에 근거한 정연한 구성 속에서도 부분적으로 돌출된 덩어리, 매입된 진입부, 불규칙한 옥상 볼륨 등을 통해 기하학의 규범성을 교란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적 상상을 유도한다. 이는 기하학을 기계적인 질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위한 형태’로 전환시키는 김수근의 독창적 미학적 접근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KIST 본관이 단순히 외형적 조형미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 구성의 이면에서 구조와 재료의 본질을 건축적 언어로 구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동시대의 펄 루돌프(Paul Rudolph)나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보인 구조적 기교와 조형적 과장의 접점과도 맞닿아 있으며, 특히 루돌프가 설계한 예일 대학교 예술건축대학 건물에서 보이는, 대담한 수직성과 노출콘크리트의 촉각적 깊이가 KIST에서도 유사하게 체현된다. 하지만 김수근은 루돌프처럼 조형적 과시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의 위계성과 자연광의 유입, 사람의 동선 흐름 등을 건축적 요소들과 융합하여, 조형적 실험이 인간의 감각과 동선을 수용하는 건축으로 작동하게끔 조정했다.
KIST 본관의 배치는 단순한 기능적 효율을 넘어선다. 당시 한국은 전쟁 후의 국가 재건기였고, 과학기술을 통해 산업화를 꾀하던 시기였다. 이때 지어진 KIST는 단순한 사무공간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상징하는 일종의 건축적 매니페스토였으며, 건물의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은 그러한 상징성을 현실적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김수근은 건물 외곽에 비워진 광장과 정원을 통해 단절보다는 흐름과 연결을 유도하고, 건물과 대지, 건물과 하늘 사이의 ‘간격’을 통해 한국 전통건축에서의 여백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 전통건축의 구성 논리를 부르탈리즘이라는 근대 서양 건축양식과 융합하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다. 부재 사이에 놓인 틈, 빛의 투과를 허용하는 수직적 루버, 중첩되는 벽면의 깊이 등은 모두 전통건축의 ‘담장 너머 풍경’, ‘마루 너머 바람’ 같은 비가시적 감각을 현대 구조 속에 이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조형적 흉내가 아니라, 구조적 충실성과 감각의 정제된 조율이라는 점에서 한국적 공간철학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 건축은 이러한 실험적 공간미학으로부터 급속히 멀어지게 된다. 경제성장과 함께 건축은 기능성과 경제성, 시공성과 개발효율이라는 경제논리에 점점 종속되었고, 이로 인해 김수근이 보여준 철학적 공간 접근, 조형적 실험, 구조의 미학은 급속히 사라졌다. 당시에는 ‘기술이 발전하면 더 나은 건축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전망이 존재했으나, 역설적으로 기술 향상은 건축의 실험을 위축했고, 건축이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화적 매체로 기능하기보다, 자본의 흐름을 수용하는 용기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KIST 본관은 단지 과거의 건물이 아니라, 한국 건축이 한때 가졌던 ‘진지한 가능성’과 ‘건축의 사유화’를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다. 이 건축은 단순히 보는 시선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걷고 머물고 사유하는 경험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건축이다. 구조는 단순한 하중의 분산을 넘어서 공간의 질서를 암시하고, 형태는 외관의 인상을 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각의 결을 바꾼다. 이는 “건축은 시간이 쌓인 공간의 예술”이라는 김수근의 철학과 직결되며, 그의 사유가 단지 언어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적 건축공간을 통해 구현된 점에서 매우 고유한 성취로 읽힌다.
결국 KIST 본관은 단지 과거 한 시점의 건축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건축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다시금 건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건축은 자본의 명령에 복무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인간의 사유와 감정을 담아내는 사회적 예술인가? 김수근의 이 작품은 이러한 질문 앞에 한 시대의 대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대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이 있다. 공간은 메시지이고, 형태는 사유이며, 구조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순간, 건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화이자 철학이 된다. KIST 본관은 그런 점에서 한국 건축사 속에서 보기 드물게 진지하고 복합적인 성찰의 결과물이며, 그것이 지금도 이 건물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