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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 없는 곳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다

by 책밤

우리가 ‘운명에 맡기는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기대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잣대’, 즉 명성, 지위, 인정 같은 외부의 보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루의 소음 속에서 이 두 가지 소리, 즉 외부의 기대와 내 안의 진실한 목소리를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치 군중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희미한 외침을 찾으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벽이 선물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외부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그 시간이야말로 내 안의 진정한 욕구를 들여다볼 유일한 기회입니다.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내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명성의 허무함’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황제로서 무한한 칭송과 비난을 들어야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외부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성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고, 오직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할 것을 주문합니다.

“만일 그대가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명성에 대한 갈망은 버릴 수 있으리라. 오직 그대의 본성이 인도하는 대로 행동하며, 다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말라.”

《명상록》 제8권 제1장의 이 구절은 새벽의 고독을 채우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지금 추구하는 목표가 정말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명성의 허영인가?”

“나의 본성, 즉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그저 칭찬받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새벽의 고독은 명성이나 외부의 기대를 걸러내는 강력한 정신적 필터 역할을 합니다. 새벽은 아직 세상이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칭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고요한 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오직 자신의 양심과 이성만이 판단의 잣대가 됩니다.

우리가 새벽에 홀로 앉아 계획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내적 욕구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에 글을 쓰는 이유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한 글자씩 눌러쓰며 사유의 흔적을 남기려는 작은 시도인 것입니다. 그때 느끼는 성취감은 온전히 내면의 욕구를 발현한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벽에 하는 운동이나 공부, 독서 역시 오로지 자기 성장을 위해 실천하는 것들입니다.

마르쿠스가 명성을 버리라고 말한 것은, 명성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명성이 내면의 욕구를 찾는 ‘이성의 힘’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새벽 시간은 평생 갈구해야 할 내면의 자유를 찾는 연습입니다. 우리는 이 고독 속에서 외부의 잣대 대신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고, 우리의 진정한 욕구를 구별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고독을 느끼며 의무와 욕구를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욕구가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일치할 때, 우리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를 얻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비난이나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행위가 정의롭고 용기 있는지, 그리고 절제되었는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쿠스가 말한, 외부의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인생을 일으키는 새벽의 힘>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 고요한 새벽입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속삭이듯 마찰음이 들려옵니다. 몸가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때 행하는 모든 것에는 온전한 의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힘 조절을 해가며 연필심을 깎아 책상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흰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글자에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낍니다. 고요함 속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손 글씨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가는 흔적에는 굳이 논리적 흐름을 담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깨운 이성은 하루 중 겪는 일들에 나의 의지를 담도록 돕습니다. 이는 명예를 구하고 칭찬을 바라는 마음을 줄여가는 과정입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이제는 그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집중합니다. 고요한 새벽, 그 누구의 시선도 차단된 공간에서 손 글씨를 쓰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 아닌, 오로지 나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애씁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떠 내 안의 진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고독 속에서 외부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기 임무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렇게 평범했던 하루는 이성에 의해 설계된 주도적인 삶으로 거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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