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에, 그리고 너의 손에

당신은 혹시 손해에 민감한가요?

by 책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다툼과 분쟁을 겪습니다. 생사를 가르는 심각한 문제에서부터 칼로 물을 베는 격인 사소한 다툼까지...... 마치 다툼을 피해 가는 것이 삶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분란의 소지는 넘치고 넘칩니다.

나는 절대 상대방이 될 수 없기에, 그리고 남도 절대 내가 될 수 없기에 사람 간의 생각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다툼의 많은 부분이 이해득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해관계를 초월해 유독 인생을 남들보다 평온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하루는 6살 딸아이의 등원길에 아내 몰래 젤리 한 봉지를 챙겨서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채원아, 어린이집 가서 친구랑 나눠먹어.”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왠지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합니다. 젤리 한 봉지가 부족한 건가 싶어 아이에게 이유를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나 혼자 먹을래.”였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소유욕이 강하다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젤리 하나를 나누는 모습이 내심 훈훈하고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채원이가 친구들한테 남는 젤리를 하나씩 나누면 그 젤리가 채원이에게 꼭 돌아올 거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이유를 궁금해하니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친구들이 다음번에 남는 젤리 하나를 보면 채원이가 생각나서 주고 싶어 할 테니까.”

요즘은 손해 보며 사는 사람을 보며 어수룩하고 바보 같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손해를 보게 되는 당사자들도 불 같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말입니다.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정말 그 ‘손해’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는 걸까요? 정작 그 손해는 몇 천 원, 아니 동전 몇 닢에 지나지 않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는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마 손해를 본 자신을 비난하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손해’ 그 자체는 생각지 않고 ‘내가 졌다’며 자존심 상하는 건 아닐까요?

딸아이가 젤리를 나누지 않겠다며 시무룩해하고 나조차도 손해 보지 않겠다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유독 세상을 평온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조금 손해 볼지언정 자신의 손안에 있는 달콤한 젤리를 상대에게 흔쾌히 내주지 않을까요?
나누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언젠가 돌아올 인생의 ‘복’입니다. 나눔을 받은 상대방은 분명히 마지막 남은 젤리 하나를 보며 당신을 떠올릴 테니까 말이죠.


세상에 일어나는 행복한 일 가운데 80%는 돈과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돈이 조금 없으면 어떻습니까.

행복은 나의 손에, 그리고 너의 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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