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_쇼펜하우어
오후 시간, 아내로부터 사진 한 장이 첨부된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사진에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몇 개의 책상에 나눠 앉아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엽다’라고 생각하던 순간, 아내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채원이 혼자 책상에 앉아있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다른 아이들은 3~4명씩 한 책상에 둘러앉아있는데 우리 아이만 빈 책상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슴 짠 하더군요.
말이 없는 사진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어떤 상황일까 나름 고민해 봅니다. 작은 사진을 확대해 아이의 표정을 살펴봅니다. 시무룩해하거나 의기소침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입술을 ‘앙’ 다물고 야무지게 만들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활기 넘치게까지 보였습니다. 그래도 혼자 있는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걸립니다.
‘혹여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마음에 퇴근길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딸아이에게 침착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채원아, 오늘 어린이집에서 만들기 했다며? 어땠어? 재밌었어?”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는 이런 말을 해 줍니다.
“응. 재밌기는 했는데, 오늘 좀 피곤해서 혼자 있고 싶었는데 oo랑 oo가 자꾸 따라다녀서 힘들었어.”
그랬습니다. 아내와 내가 걱정했던 그 사진 속 장면이 실은 아이의 자발적 휴식 시간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많은 곳을 갔을 때 ‘기가 빨린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지만 과도하게 중첩된 인간관계가 때론 피곤함을 주기도 하죠. 그리고 홀로 하는 사색의 시간이 줄어들수록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쇼펜하우어도 고독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던 게 아닐까요.
‘홀로 있는 시간은 외롭다’라는 고정적인 관념은 무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인싸’라며 치켜세우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각종 모임에 나가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던 경험, 다들 한번쯤 있지 않나요? 이렇듯 홀로 있는 고독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삶에 쉼을 주는 사색의 시간이 단순히 홀로 있게 된다고 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진짜’ 사색이 가능해집니다. 나날이 정신없어지는 세상은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은행 일을 보기 위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눈과 귀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기에도 바쁩니다. 홀로 있을 땐 이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오로지 깨어있는 의식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잠깐의 시간을 내어 ‘만들어진 외로움’을 한번 느껴보려 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내면의 생각을 키워 그 온화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도록 말이죠. 그리고 그 사색의 시간이 나에게 가져다줄 ‘쉼’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