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숙원

by 책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이뤄야 할 인간의 숙원이지 않을까요? 그 숙원은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더욱 원대해집니다.

또래보다 작은 키에 그에 걸맞지 않은 유창한 말솜씨로 주위를 놀라게 하곤 하는 딸아이의 합기도 승급 심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공개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하니 나름 멋진 아빠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한껏 차려입고 시간에 맞춰 합기도장으로 갔습니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는지 학부모 몇 분이 와 계시더군요. 아빠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연신 고개를 돌려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심사가 시작되기 전 퇴근한 아내가 합기도장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함께 와줘서 그런지 한껏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자, 이제 승급 심사 시작. 가부좌를 틀고 나름 진지하게 명상에 임하는 모습이 어느새 아이가 아닌 어린이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손을 꼼지락거리며 실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스티로폼 쌍절곤 돌리기, 달리기, 앞 구르기를 연이어한 후 심사의 하이라이트 송판 격파가 시작됐습니다. 심사는 부모 중 한 명이 송판을 잡아주고 아이가 격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아이 한 명 한 명이 송판을 깰 때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응원해 줬습니다. 그렇게 격파가 끝나고 아이들이 새로운 색깔의 띠를 받는 것으로 심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도장 뒤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저는 띠를 받아 들고 씩씩하게 걸어오는 딸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 아이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를 가볍게 패싱해 버리고는 엄마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딸아이를 안아주려고 살짝 굽힌 무릎과 펼쳐지다 만 양손이 조금 머쓱해졌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띠를 들어 보이며 한껏 자랑을 하고서야 저에게도 엄지 척을 해줍니다.

집에 돌아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딸아이에게 ‘아빠 패싱’ 사건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습니다. 딸아이는 별일 아니란 듯이 “엄마가 좋아야 아빠도 좋지. 우린 가족이잖아. 안 그래?”라며 능청스럽게 대꾸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일, 일생에 이뤄야 할 숙원입니다. 그래도 2가지 숙원 중 한 가지를 이루는 데는 걱정이 없을 듯합니다.


바로 평생 사랑하고 싶은 딸아이와 아내가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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