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의 유통기한
정은의 아침은 언제나 몽롱하다. 잠을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듯이. 꿈도 현실도 아닌듯이. 하지만 그날은 특별히 더 몽롱했다.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죽은 듯이 있고 싶었다.
“엄마”
한참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 정은이 몸을 일으켜 집안을 둘러보려했을 때 세상이 거대한 원심분리기에 들어간 듯 핑그르르 돌았다. 어제 저녁이 체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가시 돋친 말들을 꾸역꾸역 삼켰으니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엄마”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머리를 울려서 괴로웠다.
“왜”
한참만에야 화가 잔뜩 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 어지러워.”
“체했는갑지. 그러게 맘을 곱게 써야지. 밥상머리에서 못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어지러움 때문인지 엄마의 말소리가 울려서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데다 새침스러운 말투가 피곤했다. 돌아보니 엄마가 양말을 신고 있었다.
“ 가게?”
“ 니가 가라며.”
눈을 뜰수록 천장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물 한 컵만 떠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엄마의 뾰루퉁한 뒷모습을 보자 입술을 깨물게 됐다. 정은은 벽을 짚고 기어가듯 거실로 나섰다. 소화제를 찾으려 싱크대를 뒤지는 동안에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정은이 식은땀을 흘리며 컵을 꺼낼 때까지 엄마는 기어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윽고 '쾅', 냉정한 문 닫히는 소리가 정은의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한참을 누워서 기다렸다. 하지만 무던한 정은도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소화제를 먹고도 어지러움이 나아지지 않았고 왼쪽 귀는 먹먹하다 못해 거대한 솜뭉치를 박아넣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석증이지 싶어 거의 기어가다시피 병원에 갔다.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이것저것 흔한 질문을 하더니 청력검사를 제안했다. 당장 이 회전하는 세상을 멈춰줄 약이 간절했건만, 검사 부스로 떠밀려가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공중화장실처럼 좁고 밀폐된 부스 안, 정은은 식은땀을 흘리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삐-”
헤드셋 너머로 거슬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버튼을 누르고 쉬었다가 기계음이 다시 들리고 버튼을 누르고 또 기다린다.
“김정은 환자분 검사 결과 나왔어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어지러움증은 가시지 않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기다리다가 간호사의 목소리에 간신히 메스꺼움을 삼키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돌발성 난청이에요. 검사에서 왼쪽 청력이 많이 떨어진 걸 볼 수가 있어요. 거의 못 들으시거든요? 이 경우에는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오늘 고막에 주사를 놓을거에요.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직접 주입해서….”
의사는 아주 느리고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은의 귀에 들어오는 말은 고막에 주사를 놓겠다는 소리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고통만 없애준다면 빨리나 놓으라고 하고싶었다.
“환자분, 혹시 도와주실 분 없으세요?”
정은은 눈을 감고 손을 저었다.
“택시 타고 가면 되요. 괜찮아요.”
정은은 주사실에 누워 처치를 기다렸다. 귀 안쪽으로 차가운 액체가 꾸역꾸역 밀려 들어올 때마다 고막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마취 덕에 날카로운 통증은 죽었지만, 몸속 가장 깊은 곳을 타인이 헤집고 있다는 불쾌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진짜 재앙은 주사바늘이 빠진 직후였다. 주사액이 전정기관을 건드린 탓에 잠잠했던 어지럼증이 폭발했다. 바닥이 수직으로 세워지고 천장이 발밑으로 꺼지는 착각. 정은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입을 틀어막았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기어 들어간 정은은 변기를 붙잡고 속을 다 게워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병원 화장실 바닥을 뒹구는 스스로가 끔찍했다.
“죄송해요. 예약은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네네,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주사는 다음 주 안에 꼭 맞으셔야 효과가 있어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푹 쉬세요.”
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예의를 차려 정은을 배웅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라는 그 상냥한 위로가 오히려 비수처럼 꽂혔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땀에 찌든 몰골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집까지의 5분이 마치 지옥을 횡단하는 시간 같았다.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허물처럼 벗어 던지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이 오한으로 덜덜 떨렸다.
‘돌발성 난청은 영구적으로 청력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질환이니까…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서 청력을 회복해야…..’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정은의 세상도 멈추지 않고 돌았다. 어지럼증이 이렇게까지 공포일 줄은 몰랐다. 지금 당장은 이 어지러움증이 멈추지 않을까봐 절망스러웠다.
‘도와주실 분 없으세요?’
의사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정은은 엄마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화를 거는 순간 쏟아질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냐"는 식의 타박과 비명 같은 말폭탄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난청보다 무서운 건 엄마의 독설이었다.
몇 시간이나 기절하듯 잠들었을까. 휴대폰 진동 소리에 눈을 떴다. 화면에는 영은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언니, 엄마 집에 가라그랬어?
먹먹한 귓등에 심장소리가 울렸다. 마치 심장에서 퍼올린 피가 전부 귓등을 때리는 것 같았다. 울컥울컥.
당분간 우리집에 있으라고 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정은은 휴대폰을 뒤집어버렸다. 그리고 제발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자기를 빌었다.
대단한 기적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아침에 일어나면 이 어지러움증이라도 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