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사람

장녀의 유통기한

by 안이온

나 지금 집에 갈라고


출근하자마자 회의에 소집당한 영은은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못 받았다. 게다가 바로 이어 도착한 문자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서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언니 집에 몇 주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갑자기 집에간다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언니는 도통 참는 법이 없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반드시 티를 냈다. 물론 엄마가 또 언니 신경을 건드린 것이 분명하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엄마를 조금만 더 참아줄 수는 없었을까.


언니가 엄마 집에 가라고 했어?


회의실에서 눈치를 보며 문자를 보냈다. 조금은 신경질이 났다. 답은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불을 지르는 사람과 끄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있다.


당분간 우리 집에 있으라고 할까?


신랑에게 묻지도 않고 일단 중재에 나섰다. 투닥거리다가도 이내 둘다 마음을 돌리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영은차장 바빠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개뿔. 영은은 멋쩍게 웃으며 눈길을 돌렸다.


“엄마, 어디에요?”


영은은 답이 없는 언니 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이지.”


심드렁한 목소리 너머로 악에 받친 기운이 느껴졌다. 영은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애. 언니 집에 좀 더 있다가 오지.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니 언니가 가라더라! 못된 노무 기집애. 내 지 눈치 보느라고 골병이 났어. 냉장고엔 술만 들었지 먹을 거 하나 없고, 지 엄마는 굶어 죽든가 말든가 전화 한 통을 안 해. 아주 지밖에 몰라!”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진 비명처럼 수신기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무실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져 영은은 비상구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엄마의 넋두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휴.. 아빠 짐도 정리해야되는데…. 너무너무 무서워서 거실에 이불한장 펴 놓고 그 위에 앉아서 꼼짝을 못 하고… 화장실도 무서워서 오줌도 못 싸고 있어. ”


“이따 퇴근하고 들를께. 우리집으로 가요. 내가 모시고 갈께. 짐정리는 천천히 하자.”


“됐어. 김서방도 있는데.”


“엄마는, 뭐 그런 말을 해. 김서방도 엄마 모시고 오랬어. 괜찮으니까 우리집 가.”


엄마는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같았다. 영은은 30분째 계속되는 통화에 슬슬 눈치가 보였다.


“나 이제 그만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이따 갈테니까 뭣 좀 챙겨 먹고 계셔요.”


“오지말라니까, 바쁜데 뭐하러 와. 그냥 버텨 볼테니까 그냥 집에 가.”


“아휴, 또 밤 중에 못 견디겠다고 울면서 전화하지말고 그냥 나 갈 때 같이 가. 나 이제 정말 들어가야돼”


결국은 영은의 짜증으로 상황이 종결되었다. 한시간 가까이 자리를 비운지라 종종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언니, 회사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대충 눈치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점심시간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아니, 엄마가 집에 갔다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


“몰라. 뭐가 또 거슬렸나보지.”


“.....언니는 괜찮아?”


“아니.”


“.... 엄마가 아빠 짐 정리도 해야된다고 하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유산정리도 해야한대. 찾아보니까 기간 내에 안 하면 강제 상속인 것 같아.”


“......... 그래서?”


“언니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알아?”


“............”


습관적으로 눈치를 보는 영은은 언니가 대답이 없자 더 주눅이 들어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일단 엄마는 내가 집에 모시고 올게. 언니 신경쓰지마.”


“.......... 나 몸이 안 좋거든. 니가 좀 알아봐. 어떻게 하는건가.”


“어어, 그래. 내가 알아볼께. 언니 어디 아파?”


“나중에 통화해.”


“아, 그래. 언니 쉬어 그럼.”


영은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패턴이다. 언제나 두 사람의 쓰레기는 영은에게 돌아온다.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현관에 탈탈 털듯이 엄마와 언니가 투닥거리를 해대고 두사람은 현관을 쾅 닫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결국 영은은 떨어진 진흙과 함께 현관앞에 남겨진다. 신랑에게 물어도 모르겠지. 영은은 자상하지만 그녀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밥상에서 생선가시를 발라서 밥그릇에 얹어주고 그녀의 큼직한 결정들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남자. 하지만 동시에 영은의 일을 절대 대신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아무래도 엄마를 우리집에 당분간 모셔야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퇴근하고 내가 엄마 집에 가서 모셔와야할 것 같은데… ”


“아, 그래…? 그래 그럼. 혼자 가도 되겠어? 같이 갈까?”


“언제 끝나는데? 안 피곤하겠어?”


자상하지만 결코 영은의 일을 대신해주지는 않는 남편. 그는 기꺼이 같이 가주겠다고 답했지만, 영은은 알고 있었다. 엄마의 그 지독한 슬픔과 아빠가 남긴 퀘퀘한 유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치워야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라는 것을.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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