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이라.... 나는 TV프로그램에서 유명인들이 스승을 찾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예전엔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사연들은 성공한 사람들이 지인을 찾거나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이야기였다. 나는 유명하지도 않고 성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씩 꼭 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셨다. 지난 20대 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문득 생각났고 30대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중학교 후배를 만나면서 또 선생님이 생각났다. 지금은 40대. 그러고 보니 10년에 한 번씩은 떠올렸던 거다.
그분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이다. 그때 나는 권위적인 부모 아래 조용한 장녀로 자라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세상에 대해 배신감을 가질 때였다. 완벽할 줄 알았던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모순을 느꼈고 엘킨드(Elklnd)가 말하는 청소년기의 자아 중심성이 생기면서 사춘기의 반항기를 맞았다. 새로 부임하신 여자 선생님은 남자 중학교에서 오셔서 그런지 성격이 털털했다. 종례 시간 몇 명의 아이들이 자리에 없어도 태연하게 진행했고 교무실에 아이들이 잘못해 불려 가더라도 크게 화내지 않고 경고만 했다. 쉬는 시간 도시락을 까먹다 교실에 냄새가 남았을 때, 비위가 약한 국어 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하며 밥을 먹은 친구들의 따귀를 때렸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럴 수도 있지!”라며 교무실로 불려 온 우리를 이해하셨다. 그날, 교실에 들어오자 이 사건으로 국어 수업을 못 들었다며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우리를 째려보기도 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가출이 되었고 학교에 등교 안 한 나를 찾겠다고 시내를 뒤지기도 했던 선생님. 그러고 보니 나도 꽤 선생님 속을 썩였던 아이였다.
‘그래서 생각이 났을까?’ 아이를 가르치는 유아 교사가 되고, 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안정된 가정을 꾸렸을 때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시절 엄마가 없을 때 따뜻하게 나를 이해해 준 마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교육청 사이트에서 선생님 찾기를 검색하며 여러 번 찾으려고 했지만 이름밖에 모르니 검색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단어 하나로 워낙 검색이 잘되니 그냥 네이버 창에 쳐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예전에는 그렇게 찾기도 어렵더니 관련된 이야기가 첫 줄에 떴다. 그리고 사진까지. 관련 검색 내용은 환경 교육을 하는 교사로 아이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고 수업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있었다. 교육과정이 바뀌며 새로운 수업과목으로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아이들과 함께 다룬다는 내용.
‘이것 아니었으면 못 찾을 수도 있었겠다.’ 선생님은 여전히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 계셨고 지금은 수석교사로 내년엔 퇴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이 정말 뵐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는 근무하시는 중학교를 검색했고 전화를 걸었다. 교무실에서 연결해 준 선생님과의 통화.
“선생님! 저 제자예요.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응? 그래? 중앙여중?”
“어떻게 30년도 지난 중학교인데 기억하세요?”
선생님이 바로 추억의 학교 이름을 꺼내주니 기뻤다. 물론 다른 건 기억 못 하시지만. 나는 당장 만날 날을 정했고 전화번호도 저장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흥분됐다. 감동에 눈물도 날 것 같았다. ‘괜히 전화했나?’라는 긴장감도 생겼다.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질 때 아이가 하교하고 들어왔다.
“세이야 엄마 다음 주에 중학교 선생님 만나! 엄마 어릴 적 선생님이야!”
흥분된 목소리로 아이에게 소식을 전했지만 피곤한 아이는 별 반응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기분 좋은 흥분과 설렘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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