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었다. 딸과 함께 1시간을 넘게 걸으며 이야기꽃을 피운 게 얼마만인가. 그것도 아이가 먼저 걷고 싶다고 해서 다녀온 건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세상 무섭다는 중2, 중2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게 굴면 중2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겠냐만은 우리 집 중2는 아주 평화롭고 유연하다. 여자아이들은 사춘기가 이르다더니 우리 딸은 6학년때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중학생이 되었을 때 최고조를 찍었다. 곁도 안 내어주고 스치는 것도 겁이 날 정도였다. 얼음공주가 따로 없었다. 중2가 된 지금은 아빠와 손도 잡을 만큼 달라졌다. 요즘만 같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아이와 걷기 위해 보문호수를 찾았다. 여길 걷고 싶다는데 굳이 다른 곳에 갈 필요도 없었다. 그날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다 못해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딸아이는 걷기도 힘들 텐데 조질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처음 듣는 생소한 아이돌 이야기부터 같은 반 친구이야기까지 오디오가 빈틈이 없었지만 그 재잘거림이 싫지 않았다.
해가 뜨니 안개도 점차 걷힌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거처럼 몽환스럽기까지 하다. 잠시 앉아가고 싶으나 안개가 유독 짙었던 탓에 의자가 모두 젖어있다. 서서 휴식을 해가며 걷고 걸었다. 힘들 법도 한데 힘들다는 소리 없이 잘 걷는 아이가 예뻤다. 이런 시간이 소중하고 아까워 잡고 있고 싶다. 보문호수를 다 걷고 나니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똥이 마렵다며 얼른 집으로 가자고 호들갑이다. 얼른 아이를 태워 집으로 향했다. 큰일을 치르고 나온 아이가 기분 좋게 이야기한다. "엄마, 쉬는 날 또 같이 가자." "안 힘들었어? 그래. 좋아. 꼭 가자." "조금 힘들었는데 괜찮아. 살도 빼야지." 이 마음이 굳건해져 내가 쉬는 날까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거기에 더해 마음도 몸도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