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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제이 Jun 23. 2024

예외는 없다. 외국인도 히잡을.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 분명한 그때의 이란

10년 전에도 이란은 '여행위험지역'이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이란을 간다고 하니 만류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도 이란을 갈 생각은 없었는데 (예정팀에 없었음) 이란가면 사막을 데려가준다기에 거기에 혹해서 이란 공연팀에 합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란에 가서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날씨에 사막에 가면 죽는다고 단칼에 거절을 당하고 말죠. 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사막에서 별 보기'가 그렇게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순간.


이란의 테헤란은 생각보다 훨씬 평화로운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가기 전에 워낙 위험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긴장을 한 상태로 갔었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현재는 정세악화로 '특별여행주의보'가 내려졌더군요. ㅠㅠ)

어찌 보면 무지의 이방인이 느낄 수 있는 평화시기였을지도 모르죠.


제 기억 속의 이란은 히잡이 너무 힘들었고 (하고 다녀보니 더 이해가 안 감) 태양은 뜨겁지만 그늘은 단숨에 시원하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성들은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역시나 문화적으로 색감과 문양은 멋진 것으로 기억됩니다.


1. 히잡

이란에서 여성은 모두 히잡을 착용해야 하고 발목이나 손목이 드러나도 안된답니다. 여행객도 예외는 없었어요. 얼굴전체를 가리지는 않아도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쯤 되니 샌들은 허용해 주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낮 온도가 37-8도를 웃도는데 몸 전체를 천으로 감고 다니는 것은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사실 이것이 뭐 그렇게 큰일이겠어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길을 걷다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벗겨졌거든요. 뒤에서 오던 현지코디네이터가 깜짝 놀라서 얼른 씌워주면서 그러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때서야 살짝 실감을 했습니다. 철컹철컹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무섭.

문제는 무대 위에서도 예외는 없다는 점이에요. 여배우는 모두 히잡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극의 완성도 같은 것은 고민의 범주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건 미리 알려주면 좋았으련만. 게다가 우리 배우의상이 한복(1950년대쯤의 일상복)이라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법이라니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결국 히잡을 쓰고 공연을 했어요. 그 모습이 수녀님 같기도 해서 퍽 난감했지만 다녀와서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술 대신 차와 물담배

이란에서 술이 법으로 금지인 것은 대부분 알고 계실 텐데요. ㅎㅎ

하루 일과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마치는 이들에게는 괴로운 나날이었고 술을 평소에도 마시지 않는 제게는 보통의 나날이었습니다. (ㅋㅋ 다신 오지 않겠다며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

 술 대신인 것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분들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수다의 꽃이 어디서든 만발을 하더라고요. 차와 함께 말이죠. 아마 그리고 이때 물담배를 처음 본 것 같은데 약간 향들도 다양하고 맛이 묘하게 달달했던 기억이 나네요.


3. 날씨

저는 이란의 날씨가 맘에 들었어요.

태양아래 한 2-3분만 서 있어도 탈 수 있을 듯한 뜨거운 느낌인데 그늘에 가면 바로 시원해집니다. 습도가 거의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정도 뜨거운 날씨면 있을법한 벌레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잠시 머문 이방인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요.)


4. 친절한 사람들

아주 짧지만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이 날 하프오프데이였을 거예요.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산책하다가 집어 들고 온 지도를 보면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데 길을 건너가시던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어디 가느냐고 도와주겠다고 하시군요. 아마 길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그래서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더니 무척 안심이 되는 얼굴로 웃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들고 가시던 비닐에서 아몬드(아마 그걸 한 봉지 사서 가시는 듯)를 한 움큼 꺼내시더니 먹으면서 가라고 ㅎㅎ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덕담까지 건네주시고 성큼성큼 다시 길을 건너가시더군요.

너무 상냥한 순간이었습니다. 일부러 길을 건너 도와주러 오시고 견과류도 한 움큼이나 주시고 말이죠.


이런 이란에서 무엇을 가져왔을까? 페스시아 기둥 황소머리 장식품과 마그넷입니다. 현지에서 급하게 조달한 옷도 샀었는데 그것은 이미 버려졌고 나머지는 이 두 개 밖에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이제 보니 황소머리 장식품에 이름표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없군요.

이렇게 또 이란을 다시 한번 기억해 봅니다.

제가 갔을 때와는 너무 다른 상황이라 유감이네요. ㅠㅠ



p.s 이란 비자 발급 당신 우리 팀 모두 15일짜리 비자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저만 30일 비자가 나왔어요. 다들 저보고 이란에서 살 법한 얼굴인가 그러면서 웃곤 했는데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다음 해였을까요?  미국공연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이란을 다녀온 것 때문에 상당히 큰 문제가 되었다는 후일담.


행사 마지막 날 밤 이곳에 물을 가득 채우고 꽃잎을 띄워서 장식을 한 것이 상당히 묘하고 아름다웠는데 보여줄 만한 컷이 없다. 
너무 예쁜 타일들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선 차도르를 입어야 했다. 입구에서 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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