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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May 25. 2018

01 달팽이 오지랖


열흘 전에 바닷가에 다녀왔다. 한손에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하는데 달팽이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와서 온동네 달팽이들이 수분 충전하러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살짝 피하고 다시 걸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거 바다만 보고 걷다간 달팽이를 밟겠다 싶었다.


5월은 자비로운 부처님의 달인데 함부로 생명을 대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개미 한 마리 안 죽이려 성긴 짚신을 신는다고도 하지 않는가. (1차 깝침)



아무튼 그래서 보이는 달팽이들을 하나 둘 넓은 나뭇잎에 올려주었다. 그런데 올려놓고 생각해보니 너무 높아서 이도저도 못하면 오히려 달팽이가 위험해지는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다시 서서 고민을 했다. 달팽이들을 모두 바닥에 내려놓을까 했지만 그래도 무심결에 밟히는 생보다야 나뭇잎 위에서 아둥바둥 혼자 힘으로 움직이다가 맞이하는 최후가 나을 것 같았다.(2차 깝침)



한참을 그렇게 달팽이를 옮기고 나니 유명하다던 테라로사 커피는 다 식었고 바다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내가 뭐라고 오랜시간 달려온 달팽이를 나뭇잎 위에 올려놨을까. 지나 잘 살 것이지.


아무튼 강릉 모든 달팽이를 구해줄 것도 아니고 달팽이협회에 후원금을 내줄 것도 아니면서 알량한 연민으로 허튼 짓하는 건 올해도 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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