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12는 결승선일까 출발선일까

by 더하기

지난번에 숫자 3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숫자 3은 삼(三)이 아니라 삶(生)으로 읽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숫자 12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선물, 축복, 환대, 불빛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의외로 ‘12 Days of Christmas’였다.

아마 크로스핏 때문일 것이다.

매년 크리스마스나 이브가 되면 여러 크로스핏 박스에서 ‘12 Days of Christmas’라는 와드를 진행한다.

올해도 내가 다니는 박스에서 이 와드를 했다.

우리 박스에서는 전통처럼 와드를 끝내면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야 한다.

이 순간이 내가 한 해 중 가장 크게 기념일을 환대하는 순간인 것 같다.

문득 생각했다.

왜 숫자 12는 자주 등장할까?


1년은 12개월이고, 1다스는 12개다.
예수에게는 12명의 제자가 있었고, 하늘에는 황도 12궁이 있다.

‘12 Days of Christmas’ 역시 성탄절 이후 12일이 지나면 에피파니(Epiphany)를 맞이한다.

숫자 12는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끝내는 단위로 자주 쓰인다.
그렇지만 ‘완벽한 끝’이라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준에 가깝다.

12시가 되면 하루가 끝나지만 곧바로 1시가 시작된다.
12월이 지나면 한 해가 끝나지만 바로 다음 해가 온다.

크로스핏 와드도 마찬가지다.
12 Days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12는 “여기까지가 하나의 기준이었다”고 말해주는 숫자인 거 같다.

그래서 결승선보다는 출발선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는 끝이 필요해서 12를 만든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12라는 기준을 만든 건 아닐까.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시 숨을 고르기 위해.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후에도 우리는 바로 새해를 준비하고, 와드가 끝난 뒤에도 다음 날 다른 와드를 진행한다.

그래서 오늘 와드가 끝난 뒤 외쳤던 “메리 크리스마스!”는 올해의 마지막 인사라기보다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찍는 작은 기준점처럼 느껴졌다.


숫자 12는 결승선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가 없는 출발선도 아니다.
한 경기를 무사히 치렀다고 인정하고 다시 준비하는 자리.

그러니 전 경기를 복기하며 이번 경기를 맞이해보자. 숫자 12는 늘 끝에 있으면서도 다음을 향하고 있는 숫자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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