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첫 브런치 연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올 초 대학에 갓 입학한 둘째를 포함해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재미없는 남편과 달랑 둘만 남게 되자 달갑지 않은 감정들이 날 찾아왔다. 사실 대학 합격 발표가 나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곧 내 곁을 떠나 새로운 둥지로 향할 거라 막연히 생각해 오던 것이 현실이 되자 세상이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내 나이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라 그리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 구렁텅이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누구보다 씩씩하게 견뎌내고 싶었다. 독립이라 저리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서운하고 얄미워 나 역시 보란 듯이 그들로부터 독립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싶었다.
자칫 울적한 감정에 휩싸일까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혼자 숲 산책을 하고 이런저런 새로운 것을 시도해 가며 애써 몸을 바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공허함은 쉽게 물러갈 생각이 없었다. 마음을 다스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 고민이 필요치 않았다. 지난 몇 년간의 글쓰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소 무리인 줄 알지만 그래서 연재라는 걸 난생처음 시작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매주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쓰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내었다.
그동안 2, 3주일에 한편씩 발행하던 글쓰기 속도를 감안하면 매주 한 편씩 써야 하는 연재는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만의 약속이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3편 정도를 미리 써두고 맘 편히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 하면 어느 정도 발행일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연재를 시작하던 초반엔 울컥하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라 글이 술술 잘 써졌다. 손이 알아서 마음의 소리를 받아 적었다. 그러나 곶감 빼먹듯 미리 써 둔 글들을 하나 둘 발행하고 나니 그다음부터 다급해졌다. 무슨 유명 작가라도 되는 양 매번 마감 날짜에 쫓기듯 글을 쓰게 된다.
발행일이 일요일인 탓에 금요일과 토요일이 되면 왠지 마음이 묵직해져 다른 일은 손에 통 잡히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쥐어짜고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머리와 마음이 움직여야 글이란 게 써진다. 거기에 감성과 글감이라는 연료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놈의 노화라는 장애물은 머리 회전은 둔하게 마음은 딱딱하게 만들고 있다. 확실히 몇 년 전과는 다르다. 그러다 어찌어찌 완성된 글을 발행하고 나면 한주 숙제를 다 마친 홀가분함에 속이 후련해진다. 그렇게 지난 4달을 보내왔다.
숙제를 열심히 제출한 덕에 글 쓰는 속도는 다소 붙었다. 지난번엔 이틀 만에 글을 완성하기도 했다. 시간을 많이 들어 글을 쓰면 그만큼 잘 다듬어지긴 하나 가쁜 호흡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큰 차이는 없었다. 때론 감정에 휩싸여 단숨에 써 내려간 글이 의외의 반응을 얻기도 했다. 물론 많은 독서와 글쓰기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필력은 또 타고나는 것이다.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글 쓰는 속도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니 요즘 또 다른 일로 속을 썩이고 있다. 날 너무 과소 평가 했나 보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아이들에게서 독립을 해 버렸다.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아이들 모두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특별히 걱정할 일이 없다. 나 역시 이것저것 공부하고 남편과 재밌게 지내려 노력하니 챙겨야 할 아이가 없는 요즘이 너무 편하다. 간혹 1년 전을 떠올려보면 그땐 어째 지냈나 싶기도 하다. 아이가 재수 없이 단번에 대학에 붙어준 게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매일 아이랑 나누던 전화통화도 이젠 일주일에 2, 3번으로 줄었고 대신 간단한 문자로 생사를 확인한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반갑지만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도 반갑다. 닥쳐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었나 보다. 솥뚜껑 근성이라 쉽게 뜨거워지지만 또 쉽게 식는다는 걸 깜빡했다. 그러다 보니 독립을 주제로 글을 쓸 만한 거리가 딱 떨어지는 정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부모로서 독립은 어느 정도 다 이뤘는데 계속 이 주제로 글을 쓰려니 무리가 따른다. 슬슬 연재를 마쳐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목표가 최소 20편이라 여기서 멈추기엔 뭔가 살짝 부족하고 아쉽다. 생각 끝에 독립의 종류를 조금 확장하기로 했다. 자식뿐 아니라 내 인생에 아직 발목이 잡혀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남편, 돈, 사람 관계, 욕심, 집착등 여전히 투사가 되어 독립을 쟁취해 나갈 것들이 수두룩이다. 눈을 크게 뜨니 글감이 훨씬 다채로워진다. 이럴 줄 알았음 처음부터 브런치 연재 제목을 '부모 독립기'가 아니라 그냥 '50대 아줌마의 인생 독립기'라 할 것 그랬나 보다.
어느새 15번째 연재글을 쓰고 있다. 남들 눈에 어떨지 모르지만 내 눈엔 이렇게까지 나 자신이 기특할 수가 없다. 간혹 그거 하면 무슨 수익이 생기냐고 물어오는 사람들 앞에서 쪼그라드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꼭 그렇게 모든 걸 돈과 연관시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사실 글을 써서 수익을 얻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노력과 능력,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분수를 잘 알아 그저 내 글을 찾아주시는 몇몇 분들이 계신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동안 부족한 내 글을 찾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울려 앞으로 글의 방향이 아주 살짝 틀어진다고 해도 그냥 부록 편이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