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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에 없던 것들

by 코니

한 달 넘게 욱신거리는 어깨 때문에 살짝 심사가 틀어져 있다. 팔꿈치 통증이 좀 덜하다 싶더니 이젠 어깨가 문제다. 여태껏 멀쩡하게 잘만 쓰던 어깨에 처음으로 이상이 감지되자 한숨부터 나왔다.

'에휴, 너도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기분 나쁜 아릿함은 손목까지 타고 내려워 손가락도 뻣뻣하다. 다소 억울한 게 오십견이니 뭐니 하는 어깨 질환을 예방하고자 마흔이 되면서부터 지속적인 어깨 스트레칭을 해왔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 지금도 팔은 쭉쭉 위로 잘 올라가지만 움직일 때마다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삐거덕거림이 감지된다. 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느낌이다. 좋지 않은 쪽으로.



물론 병원은 다녀왔다. 힘줄에 염증이 생겼다고 해서 1주일치 약과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처방받았다. 요즘은 정형외과를 찾는 게 제일 무섭다. 조금만 아프다 하면 굳이 안 해도 되는 비싼 검사와 치료들을 권한다. 누가 봐도 뻔한 그냥 감기인데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그것부터 검사하자는 식이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영수증을 들여다보면 도둑놈들이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몇 번 낚여 큰돈을 쓰고 난 다음에서야 더 이상 그들의 호구 노릇은 그만두기로 했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그런 검사와 치료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은 서서히를 넘어 본격적인 노화에 들어갔다. 알아서 적당히 조심하며 써먹는 수밖에. 뭐 어깨뿐일까. 조만간 무릎도 허리도 다 삐걱거리기 시작하겠지.




"엄마"

휴대폰 너머 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뭔가 간절함이 담겨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살짝 긴장된다.

"엄마 있잖아, 2학기에도 수업 안 하고 만약 기숙사도 떨어지면... 나 집에 내려가야 돼?"

얼마 전까진 당연히 2학기엔 수업이 있을 거라 호언장담하던 아이다. 어제 교수와의 면담에서 무슨 소릴 들었나 보다.

"너는 어쩌고 싶은데? 네 마음을 얘기해 봐"

아이는 조금도 주저 없이 어리광 섞인 말투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난 서울에 있고 싶어. 서울에 살고 싶고 이렇게 혼자 지내고 싶어"

정확히 말하면 2인실 기숙사이기에 혼자는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갔지만 올해 의대에 입학한 딸아이는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방학 아닌 방학을 보내고 있다.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신입생이라 그저 이렇게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누굴 탓해야 할지 답답하긴 아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어제 교수와의 첫 면담에선 유급에 대한 말만 이어지고 달리 도움 될만한 얘기를 못해줘 미안하단 소리를 들었단다. 대통령이 바뀌고 이젠 무조건 수업이 재개될 거란 철없는 낙관에 빠져 있던 아이들도 별 다른 진행이 없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도 서울에 본가가 있는 학생들은 좀 낫다. 문제는 우리 아이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다. 제일 머리 아픈 거주의 문제가 발생한다. 학교마다 기준은 다 다르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신입생들에게 거리 우선으로 기숙사를 배정했다. 국내에서 제주도를 제외하면 가장 먼 거리이기에 지금 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2학기부턴 선발 기준이 달라져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단 신청은 해놨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물론 학교 기숙사가 따로 방을 구하는 것보단 비용이 적게 들긴 해도 따지고 보면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부모 입장에서 보다 안심되기에 기숙사를 선호하는 것뿐이다.



조만간 수업이 시작될 거란 소리를 선배들에게서 계속 들어왔기에 아이는 2학기때도 당연히 서울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기숙사를 6개월 신청을 해서 8월 20일경까진 있을 수 있지만 이제부터 아이도 슬슬 걱정이 되나 보다. 수업도 안 하는데 큰돈을 들여가며 서울에서 계속 지내기 미안한 게다. 실질적으로 아이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에 비하면 지방 교대를 졸업한 지 오빠는 거저 대학을 보낸 거나 마찬가지다.



사립대라 수업료가 연간 천오백만 원에 육박한다. 거주비와 생활비를 합치면 정말 아껴 아껴도 최소 삼천만 원은 있어야 한다. 나중에 본과에 올라가면 수업료는 더 오를 테고 그걸 곱하기 6을 하면 아이 졸업 때까지 들어가는 돈이 대략 계산된다. 그나마 남편 회사에서 자녀 학자금이 지원되기에 우리 형편에 서울에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남편 퇴직이 5년밖에 남지 않아 수업이 미뤄지는 만큼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사라진다. 정년퇴직 연령이 연장되길 간절히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모든 사항을 알고 있기에 아이는 부모 눈치를 본다. 그렇다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을 따박따박 받아 쓰며 마냥 철없이 놀고만 지내는 아이는 아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진 용돈을 좀 줄이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태기로 아이랑 이미 얘기했다. 집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깨우치게 하고 싶어서다. 부모 돈은 땅을 파서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라 그걸 벌기 위해선 어떤 수고가 들어가는지 아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외벌이 가정이지만 빚 없이 이 정도 저축하고 사는 것도 사실 지금까지 아이들 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이다. 큰애도 그랬지만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제껏 학원을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 기껏해야 사설학원 인강만 신청해 들었다. 그것도 의대에 합격해서 장학금 명목으로 수업료를 모두 돌려받았다. 아이에게 그 돈을 그대로 준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아이는 서울에 올라간 이후 지금껏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자기보다 겨우 한 살 어린 고3 학생 영어를 가르치는데 용돈에 제법 보탬이 된다. 한 번은 용돈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물어보니 기특한 소리를 한다.

"엄마, 나 통장에 돈 많아"



이렇게 기특한 아이와 떨어져 사니 처음엔 참 우울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곁을 떠나는 순간 날개를 달았다. 얼마나 하루하루가 신나고 설렐지 내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아이가 훨훨 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잡아 끌어내리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시간은 머무르지 않는다. 눈부시게 푸르른 청춘을 맘껏 즐기게 해주고 싶다. 비록 내 것이지 못했던 그 자유로움을 아이들만은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애초부터 아이에게 2학기땐 그냥 집에 있으라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 집에 와봤자 달리 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이제 겨우 밥에서 해방됐는데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보아하니 요즘 학과 동아리 활동과 동기, 선배들과의 약속으로 바쁜 것 같았다. 조용한 성격이라 혼자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던 내 생각과 달리 서울 생활에 푹 빠져 재밌게 잘 살고 있다. 사실 아이가 집에 가야 되냐고 물었을 때 살짝 놀랬다. 그렇게까지 엄마 눈치를 안 봐도 되는데.



"그럼 그냥 서울에 있어. 다음 달에 아빠랑 서울에 갈 테니 그때 방 알아보고 계약하자"

내 말에 아이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듯하다. 하지만 아마 아이도 내가 그리 말할 줄 알았을 게다.



아이와 통화를 끝내고 혼자 가만 앉아 있으니 조금 전 아이가 한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혼자 서울에 살고 싶다는 말이 반복재생을 설정한 것처럼 자꾸 들려온다. 솔직한 아이맘이고 모든 걸 다 이해하지만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잠시도 제 곁을 못 떠나게 날 붙잡던 아이였다. 작년까지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내가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빨리 엄마를 놔버릴 줄이랴. 여태껏 느끼던 것과는 뭔가 다른 무언가가 가슴속 저 어디선가 포착된다. 내 세상에 없던 또 다른 감정이다.




지금껏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내 세상에 없던 새롭고 낯선 것들을 하나 둘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게 반갑고 기쁜 일들이면 참 좋을 텐데 이 나이엔 그 반대의 것들이 더 많아질 시간이다. 그게 사실 걱정이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은 부지런히도 나날이 새로운 아픈 곳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도 나에게서 점점 더 멀리 날아갈 테고 그 거리감은 이제껏 느껴오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일 테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닌 게 또 인생이다. 처음 아이를 기숙사에 떼어놓고 혼자 집에 돌아온 그 밤만 해도 그렇다. 불 꺼진 텅 빈 아이 방에 들어가 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얼마나 소리 내어 울었는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좀 무안할 정도다. 그냥 집착과 욕심을 접고 체념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리고 하나 더. 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도전들로 지금보다 활기찬 삶을 만들어 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테다. 그게 바로 남은 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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