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먹고살기 힘들다
보도자료 [명사]
행정 기관 및 민간 기업 등에서 언론용으로 발표된 성명이나 문서. (위키백과)
산업부로 처음 옮겼을 때는 보도자료에서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전부 들어내면서 기사를 쓰는 것이 가장 고역이었다. 사회부에서 "이 놈이 이만큼 잘못했어요", "이 놈이 이만큼 나쁜 놈이에요"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보도자료만 보다가, 산업부에서 "우리가 이만큼 잘했어요", "우리가 이만큼 대단해요"라는 보도자료를 받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본질적으로는 정부 부처와 수사기관, 기업이 내는 보도자료의 목적에 차이가 없기는 하다. 간혹 나오는 해명 자료를 제외하면 대부분 독자들에게 최대한 널리 알리고 싶은 것, 즉 자랑할 만한 것이 보도자료로 나온다. 의미 있는 정책이나 사업을 시작했다거나, 열심히 수사해서 나쁜 놈을 검찰/법원에 넘겼다거나, 과징금 얼마를 때렸다거나, 신제품을 개발해 출시했다거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 자료의 오글거림은 건조한 육하원칙에만 익숙하던 내 역치를 한참은 넘어서는 것이어서, 산업부 발령 초반에는 보도자료에 기초한 기사를 몇 개쯤 쓰면 "무슨 놈의 자료를 이렇게 써!"라고 넌더리를 내면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 것은 기사라고 할 수 없다. 보도자료를 낸 쪽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사항과, 기자가 봤을 때 중요한 사항은 같지 않을 수 있다. 루틴한 일이라 귀찮고, 자료 구성이 지저분하더라도, 대충 다 읽어는 보고 들어낼 것은 들어내야 한다. 의문 나는 부분이나 모자란 내용이 있다면 추가취재도 해야만 진짜 기사가 된다. A라는 상장기업에서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얼마나 뛰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고 가정해 보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실제 해당 기업의 공시를 체크하면 정작 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대체 왜 자료를 그렇게 쓰지?"라는 의문은 나중에야 풀렸다. 보도자료를 써서 배포하는 홍보팀에서도 그런 식의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의 티타임에서 어떤 홍보팀 사람이 페이퍼워크가 너무 힘들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저도 깔끔하고 예쁘게 쓰고 싶죠. 그런데 실무자들이나 위에서는 자꾸 이것저것 내용을 다 집어넣으라고 하잖아요. 실적 자료 같은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요." 속으로 불만스러워했던 것이 조금 미안해져서, 그 뒤로 오그라드는 보도자료에 대한 불평은 그만 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뿐이고, 나는 그 뒤에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보도자료를 기사로 만드는 것이 나의 일 중 하나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