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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의 그때, 그리고 지금

그때 우리는

by 지니샘

기억이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숨기다 못해 붕대까지 감았었으니까.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톡 떨어져 나가 우리를 좀 아껴달라는 시위까지 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습관에 나는 그때 당시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군가는 내가 없기도 하겠지만 내 스스로의 존재로 보았을 때 그건 많이 슬플 것 같다. 난 신체의 일부로서 생활 속의 여러 부분을 직접 담당하고 뒷받침하기도 한다. 소개하려니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이 쉬이 글자로서 떠오르지 않지만, 먹고 쥐고 쓰고 입고 치고 잡고 온갖데 내가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나를 좀 더 아껴줄 수 없을까.


중학생이었나? 고등학생이었나? 당시 상황은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언제였는지는 시간이 흘러 가물해졌다. 참으로 명랑한 내 주인에게는 안타까운 버릇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다. 정리한다는 목적으로 나를 뜯고 가끔은 나를 먹기도 한다. 몸이 빨갛게 드리우고 간혹 피가 찔찔 날 때도 멈추지 않는다.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 그런 건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 보니 평소 습관으로 자리 잡아 한시도 행동을 빠뜨리지 않는다. 친구관계인지 성적인지 나를 입으로 보내는 횟수가 많아졌을 때쯤, 나에게 무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딱딱한 무언가는 나를 빨아 당기면서 내 위에 안착했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아 무서워졌다. 주인은 “굳은살인가?” 하면서 그것조차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중에는 손톱깎이로 도려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나를 빨고 물고 뜯고. 그런 헛노력 덕에 알 수 없는 정체의 무언가는 나를 점점 더 조여오기 시작했다. 손톱 아래로 절반은 딱딱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거북이가 되는 거 아니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딱딱한 것 위로 내려앉아 나는 점점 무거워지기만 했다. “휴” 주인은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나 정말 미치겠다고 어떻게 좀 해봐! 매일 소리치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질식되기 일보 직전, 알코올향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이건 사마귀입니다. 손을 물어뜯는 모양이지요? 건드리면 안 됩니다. 건드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건드리지 말라 ‘ 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의사를 만나 고개를 푹 숙인 주인을 보니 마음이 아프지만 내가 더 죽을 판이었다. 제발 날 건드리지 마, 날 그냥 놓아두라고! 날 너의 감정에 따른 도구로 보지 마! 내 울부짖음이 들렸을까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날 찾지 않았다. 고맙기보단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그러냐? 싶어 한심해졌지만 그래도 지금 안 하는 게 어디야 하며 안도했다. 의사의 말처럼 자연스레 등딱지가 사라지고, 시위를 안 해서일까, 다시 날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안다. 네 마음에 따라 우리에게서 안정을 찾는다면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너의 건강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 너를 위해 버릇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2n년째 반복하는 말을 오늘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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