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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Dec 07. 2022

꼬물꼬물 꼬물꼬물

나는 희남이로소이다. - 07

"정말요? 네 마리요? 어머, 어떡해~"


잔뜩 상기된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핑키 보호자, 아니 모카 보호자가 들뜬 표정으로 연신 어떡하냐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곳 아프니까 동물 병원에서 들어왔던 '어떡해'는 대개 걱정과 슬픔으로 가득 찬 표정에서 나왔었다. 하지만 모카 보호자의 '어떡해'는 조금 달랐다. 분명 기쁨과 설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핑키는 보호자를 닮아 눈이 큰 하얀 말티즈였다. 언제인가부터 기침이 심해지면서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을 자주 찾아오더니 어느 순간 이후로 더 이상 핑키를 볼 수 없었다. 핑키 보호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핑키는 종이 상자에 들어갔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핑키 보호자는 모카라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모카는 핑키보다 덩치가 더 컸지만 훨씬 겁쟁이였다. 항상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고 잔뜩 꼬리를 말아 숨긴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대개의 우매한 개들은 진료 들어가기 전에는 온몸을 떨며 숨고 들어가길 거부한다. 그러다 진료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떠는 것을 멈추고 허세 부리며 시끄럽게 짖어댄다. 하지만 모카는 진료실에서 나온 뒤로도 계속 떨며 사방을 경계하던 아이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진료가 끝난 뒤 이동장에 들린 채 보호자 곁으로 돌아간 모카는 잔뜩 들떠있는 모카 보호자와는 달리 여전히 이동장 구석에 몸을 기댄 채 떨고 있었다.


"이제 2주 남았어요. 슬슬 준비하셔야겠네요. x월 x일 즈음에 출산할 거니까, 아까 말씀드린 내용 잘 기억해두셨다가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뭘 준비한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수의 집사와 모카 보호자 사이에 오갔다. 며칠 뒤, 늦은 밤 집사들의 퇴근을 앞두고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네? 외과 원장님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를 받은 간호 집사는 수화기를 잠시 내려놓더니 빠르게 달려가 수의 집사를 데리고 왔다.


"여보세요? 네. 첫째 나온 지 30분 정도 된 거죠? 그 뒤로 아직 둘째가 안 나온 거예요? 그럼 바로 오셔야 돼요."


짧은 통화를 마친 뒤 남자 수의 집사의 지시에 다른 수의 집사와 간호 집사들이 분주해졌다. 잠시 후 모카 보호자가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들어왔다. 모카의 배는 눈에 띄게 불룩해져 있었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모카를 안고 처치실로 들어간 수의 집사는 잠시 뒤 대기실로 나와 모카 보호자에게 이야기했다.


"준비 다 됐으니까 이제 수술 들어갈게요.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나올게요."


"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집사들은 집에 갈 생각을 않고 모카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 집사 한 명이 두 손에 무언가를 조심스레 받쳐 들고 수술방을 나왔다. 무언가를 수건으로 열심히 비비며 드라이기로 말리던 그때 작지만 뚜렷한 소리가 들렸다.


"잉, 잉, 잉, 잉"


아! 모카가 임신을 했었구나! 그제야 모카의 배가 왜 그렇게 부풀었었는지 알았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예전엔 종종 들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엔 듣기 힘들었던 소리, 바로 아기 강아지 소리였다. 이윽고 간호 집사와 수의 집사들이 차례로 나왔고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작은 새끼 강아지들이 들려있었다. 


"애기들 다들 숨 잘 쉬나요?"


수술방에서 남자 수의 집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들 숨 잘 쉬어요."


간호 집사의 대답에 수의 집사는 감사하다며 아이들을 잘 말려서 진료실에서 대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수의 집사는 잠에서 덜 깬 모카를 데리고 수술방을 나와 모카 보호자와 아기 강아지들이 기다리고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모카의 네 쌍둥이 - 출생 직후

간호 집사들은 어질러진 수술방과 처치실을 치우며 분주했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을 때쯤 진료실에서 모카와 모카 아기들이 나왔다. 모카 보호자는 연신 감사하다며 병원의 집사들에게 고개를 숙인 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그날 평소보다 많이 늦었지만 병원 집사들은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소란스러웠던 그날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 몰라보게 큰 모카의 아이들이 병원을 찾았다. 이 귀여운 녀석들은 누가 모카의 자식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수의 집사의 손에 들려 처치실로 옮겨진 네 쌍둥이는 누가 들어도 주사 맞는 중임을 알 수 있게 돌아가며 비명을 질러댔다. 비명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무렵 녀석들은 다시 모카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왔고 병원에 들어올 때보다 더욱 긴장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모카의 네 쌍둥이 - 생후 6주 차

그 이후로도 네 쌍둥이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녀석들은 주사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지 매번 비명을 질러댔다. 난 진짜 잘 맞는데... 별로 아프지도 않구만 뭘.... 


이젠 더 이상 모카의 자식들을 볼 수 없다. 원래 고양이건 강아지건 아기일 때 자주 병원을 오다 어느 순간부터는 방문이 뜸해진다. 다들 그러는 걸 보니 으레 그런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수많은 고양이 강아지들이 커가는 것을 보아왔지만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녀석들의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란 직감 때문인지, 조금은 궁금증이 생긴다. 


녀석들, 잘 지내냐? 아프지 말고 잘 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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