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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Sep 14. 2022

내 라떼의 시작...제기랄!

“너는 꿈이 뭐니?” 어린 시절 이 질문이 나는 너무 불편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과학자가 될 거예요”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그런 게 왜 되고 싶지? 따분하게만 보이는데.


그러다 내게도 꿈이 생겼다. 무대 위의 주인공.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 되고 싶었다. 꼬마 시절 교회 가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노래와 율동. 특히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 준비하는 성탄 행사가 그리 신날 수 없었다. 관종 끼가 있었나 보다. 주인공은 한 번도 못했지만 대사 한 마디라도 좋았다. 그럼 뭐 하나. 고등학교 때 <문학의 밤> 무대에서 “또요?”라는 대사를 “똥이요?”라 뱉었다. 유일했던 그 대사 하나를. 아이들의 시끄러움 속에 묻힌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고2 때, ‘촌극 대회’ 연출을 맡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욕심이 났다. 나중에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해야겠다. 두 개 다 소화해 멋지게 살아야지!


“저, 연극 영화과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은 많이 놀라셨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 기대감이 크셨기 때문이다.

  

“언니도 그림 그리는데 너까지 무슨…! 두 딸을 다 예술을 시키라고?”

무슨 상관이지? 언니는 언니고, 나는 나인데...


공부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적이 많이 떨어지면 원하는 걸 시켜주실지도 몰라.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성적만 곤두박질. 그렇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고 먹순이인 내가 단식투쟁을 했다. 또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수능을 보고 대학로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S 대학을 지원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성적에 맞춰 간 학교에선 친구들만 마음에 들었다. 신방과 나온다고 다 방송국 PD 되는 것도 아니고, 학과 공부에는 전혀 기대감이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 졸업하면 나는 뭐가 될까…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캐나다로 향했다. 어학연수는 단지 핑계였다. 그저 시간을 벌고 싶었다. 또 다른 내 꿈을 찾고 싶었다. 부모님과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남들만큼 돈도 벌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타나길 바랐다. 하지만 웬걸, 넓은 세상은 오히려 내게 말했다.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해, 그게 진정한 행복이야!”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더 방황했다. 돈이 궁해져 뭐라도 해야 했다. 배운 건 있으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1년 후… 드디어 대학로에 입성!


매일 화장실 청소를 했다. 6개월간, 제기랄!






학창 시절, 대학에 가면 내 젊음을 대학로에서 불태우겠다고 되뇌곤 했다. 그러니 잠시 돌아가긴 했지만 대학로 부근의 공연기획사에 입사했으니 목표를 이룬 것이다. 너무도 소박한 꿈. 하지만 간절했기에 충분히 기뻤다.


공연계 입문 계기는 이렇다. 더 이상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는 게 눈치 보여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영어는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던 과목이었다. 어학연수를 통해 회화에 자신감도 붙었기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게는 마치 천직 같았다. 큰 보상은 없었지만 원장님과 아이들의 인정은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다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 그 무엇에 답답증을 느꼈다.


그 무렵 어느 날 공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매력적인 작품을 만나면 내 안 어딘가 여전히 살아있을 그 무엇을 자극할까 두려워, 애써 공연을 안 보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삘”을 받았나 보다. 낯선 공연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넌버벌 퍼포먼스. 대사가 없단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온갖 무술을 해가며 날고뛴다 했다. 관객들 평이 하나같이 좋았다.


무작정 두 장을 예매했다. 가장 한가해 보이는 친구 녀석 한 명을 불렀다. 배 아프게 웃고 즐기다 보니 커튼콜. 집에 오는 내내 내 입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봤어” 정말 날아다니던데?” “저 사람들 뭐야? 배우야? 스턴트맨이야?” “진짜 대박이지?!” 누가 봐도 몹시 흥분 상태. 내가 그랬다.


그래 역시 이거야!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그 후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라도 시작하자.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그 무대를 만드는 한 사람이 되자!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공연계 취업은 인맥이 반이란다. 전공자도 아니요, 사돈의 팔촌을 엮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다 찾은 SBS 방송아카데미 문화연출학부. 공연 기획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그 인맥, 돈으로 사자! 어떻게 해서는 강사들 눈에 띄자! 내 목적은 그거 하나였다. 수업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뒤풀이에도 빠지지 않았다. 6개월 과정을 최우수로 수료했다. 출강하시던 콘서트 회사 실장님 한 분이 인턴을 제안하셨다. 성수기 한정 계약, 야외 콘서트와 어린이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시키는 거 다 했다.


이후 정식 채용 공고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1년 전 내 가슴에 다시 불을 지핀 그 공연 팀에! 2004년 10월 4일. 대학로 사무실로 첫 출근. 정확히 1년 전 온몸을 전율케 한 그 작품에 합류하며 공연 인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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