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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Sep 16. 2022

오후 4시의 청소부가 되었습니다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출근해서 오후에는 극장으로 넘어갔다. 현 세종문화회관 주차장 부지에 전용관이 있었다. 평일 공연이 8시에 시작하고, 공연이 시작하기 1시간 30분 전부터 티켓 수령이 가능하기에 오후 4시쯤에는 극장으로 넘어가 객석 오픈 준비를 해야 했다.


함께 입사했던 친구가 티켓 발권을 맡았다. 나도 처음에 몇 번 발권기를 다뤄보기는 했다. 하지만 영 서툴러 보였나 보다(나는 기계치다). 나에게는 프로덕션 매니저 역할이, 다른 친구에게는 티켓 매니저 역할이 주어졌다. 대신 나는 극장에서 하우스 매니저 역할도 해야 했다.


공연이 진행 중이던 우리 극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전혀 케어를 해주지 않았다. 하우스 인력도, 청소 인력도 없었다. 원래는 해외 작품의 장기 공연을 계획하고 별도의 공연장으로 설치해 임시 허가를 받아 운영되었던 곳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리게 되면서 공간이 비게 되었고 그걸 우리가 사용하게 됐다. 대신 관리는 자체적으로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 공고와 지인을 동원해 하우스 인력 4명을 구했다. 그리고 인터파크 예매처에서 티켓 발권을 도와줄 한 명이 파견을 나왔다. 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러 나온 첫날부터 어려운 얘기를 건네야 했다. 우리 극장은 청소 용역이 따로 없으니 객석 오픈 전까지는 나를 도와 로비와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고. 정말 미안할 노릇이었다.


극장 아르바이트에 나선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로비는 그렇다 쳐도 화장실까지 청소해야 한다면 그걸 반길 이가 누가 있을까. 화장실 청소라고 해봐야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 물걸레질이 전부지만 그 조차도 무리한 부탁이란 걸 알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속으로는 나를 욕했을지라도) 흔쾌히 따라주었던 그 친구들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당시 우리 극장은 극장이라고 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공간 자체가 임시로 지어져 있어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극장 내부와 무대 뒤 분장실 상황은 정말 ‘거지’ 같았다. 객석의 상태는 내려앉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고 객석의 의자도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였다. 러닝 타임이 2시간이 넘어가는 공연이었다면 관객들 궁둥이가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안내원 친구들과 로비와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에 물걸레질을 했다. 티켓 수령이 시작되기 전까지 끝내야 했다. 관객이 한 명이라도 로비에 들어선 순간 청소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객석 입장이 시작되기 전에는 MD 판매대에서 프로그램 북과 엽서를 팔고 객석 오픈이 시작되면 객석 안내를 시작했다.


공연장 입구는 총 2개, 양쪽을 번갈아가며 안내원들이 티켓 수표 하는 것을 도왔다. 왜 그리 극장 안으로 음료수를 갖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극장 내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안 됨을 몇 번이고 설명해야 했다. 또 관람 연령 미만의 아이들을 제지했다.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보겠다고 우기는 어머님들이 참 힘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면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매직 블록’을 집어 들었다. 객석 내에 2명, 문밖에 2명을 배치하고 (그 친구들에게 차마 부탁하지 못했던) 로비 바닥 껌딱지 떼어내기와 판매대 구석구석 눌어붙은 떼를 벗겨내는 작업을 했다. 매일같이 하루의 반을 보내는 공간의 더러움을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는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공연장 환경도 작품의 여운을 간직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러니 모른 척할 수 없던 것이다. 누가 보면 엄청난 깔끔쟁인가 보다 할 수 있다. NO! 그건 전혀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깨끗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관객들에게 우리 작품에 대한 무엇이든 이미지가 좋게 남았으면 하는 마음, 뭐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재밌으면 다음에 또 가고 싶을 만큼 한 번의 기억이 예쁘면 좋겠다는 생각뿐.


로비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던 여사장님께서는 그런 내 모습이 많이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커피를 공짜로 많이 주셨다. 매일같이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종종걸음으로 기어 다니며 껌을 떼고 이곳저곳 걸레질을 해대고 있으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딸을 가진 ‘엄마의 마음’으로 나를 짠하게 보셨다.


“수고한다”라고 말은 하나,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사장님이 건네주시는 따듯한 커피 한 잔은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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