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가자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왔다. 다들 어쩜 그리 남자도 잘 만나고 시집갈 준비는 척척하는지. 나에겐 결혼이란 단어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는데 말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 없냐고 묻는 친구들 하는 말이 거의 비슷했다.
“너네 팀 남자 배우들 엄청 많던데… 그중에 괜찮은 사람 없어?”
“거기서 한번 찾아봐, 같이 일도 하고 연애도 하면 좋잖아”
모르고 하는 소리…. 태권도, 무술, 아크로바틱을 기본으로 몸을 쓰는 공연인 만큼 남자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연습실에서건 공연장에서건 웃통을 훌러덩 벗은 채로 다니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벗은 몸을 봐도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 지경인데 어떻게 갑자가 눈빛이 튀겠는가.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건, 한참 어리건 모든 배우들에게 OO 씨로 호칭을 통일해 존대하던 나는 배우들이 다가오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입사하기 전에 마음속에 굳게 새긴 말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 배우들과는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배우 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전에 크게 한 번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턴으로 참여했던 작품의 한 배우가 내 마음에 빗장을 닫게 했다. 당시에 그 배우는 함께 일하던 모든 여직원들이 좋아하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여기에서 “좋아하는”이라는 단어는 이성으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의 캐릭터로서, 우리 모두가 너무도 “애정 하던” 캐릭터였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따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우리 중에 그 누구도 그를 이성으로, 남자로서 반하게 될 계기는 전혀 없었다. 특히나 외모로 매력 어필할 스타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키도 그리 크지 않고, 딱히 돋보이지 않는 이목구비의 소유자인 그 배우에 대해 얘기하며 늘 설레는 수다의 꽃을 피우곤 했다.
어느 주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3호선 예술의 전당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녀 섞인 하나의 무리가 앞서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술 한잔했는지 목소리도 높고 서로 몸 장난을 치며 걸어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직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그 배우였다. 그들 무리가 너무 느릿하게 걷고 있어 나와의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리들 틈 사이를 지나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걸음 속도를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다. “아휴, 제발 좀 빨리 가라…”
결국 그 배우가 나를 알아봤다. 내게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 마냥 ‘놀라는 척 반, 반가운 척 반’ 어색한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덥석 나를 잡아 끄는 게 아닌가. 자신의 친구들 무리 속으로 날 데려갔다.
“인사해, 지금 우리 공연 진행하는 직원분이야. 그리고… 앞으로 내 여자 친구가 되실 분이다!”
“엇? 진짜? 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술 마시려면 곱게 취할 것이지.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이라니. 너무 황당하지만 다음 날이면 기억도 못 할 테니 너그럽게 넘어가 주자 싶었다. 약 한 달가량의 시간 동안 업무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내게 말을 걸어온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내 반응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직원들의 수다 타임에 빠지지 않던 존재였기에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일지언정 그리 말하는 것이 많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저 예기치 못한 하나의 해프닝쯤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공연을 마치고 거의 마지막으로 극장 매표소를 정리하고 있을 즈음 그가 다가왔다. 핸드폰이 없으니 잠시 전화기를 빌리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역 앞에서 나를 만났던 기억은 완전히 지워진 듯했다. 잘 썼다는 인사와 함께 핸드폰을 돌려주며 깍듯이 인사하고 갔다.
월요일. 공연이 없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오후 4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부터. “여보세요” 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그 배우라는 걸. 술기운에 지하철역 앞에서 나를 만나고 나를 친구들에게 어떻게 소개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다 진심이었다며 내 핸드폰으로 자기한테 전화를 걸어 번호를 저장했다고 했다. 그때가 2004년이다. 쌍팔년도 아닌 2004년.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오그라든다. 그 배우는 그 이후부터 저돌적으로 나에게 돌진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배우와 연애를 하진 않았다. 아니, 못한 건가. 공연이 끝난 후에 몇 번의 통화 후 사적으로 만난 적은 있다. 또 그가 출연하는 공연장으로 몇 번 가긴 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진지해지지 못했다. 빨리 달아 오른 쇠는 빨리 식는다고 하던가. 처음에 그는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대범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후 참 매너 없고 너무 쉽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내 연락을 피했다. 뒤늦게 통화가 되었을 때는 나를 탓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덕분에 한동안 매우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제대로 연애를 해보지도 않고 차인 듯한 기분, 먼저 좋다고 불같이 다가와 마음을 열었더니 갑자기 그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에게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남자’에 대한 불신감을 남겼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됐다. 그 후로는 남자 배우들에게 사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걸 애써 경계했다.
물론 모든 남자 배우들이 그렇지 않음을 안다. 그건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 개인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다시는 얼굴에 분칠 한 놈들에게 마음을 주나 봐라!’ 이런 마음이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했다. 그래서 제작팀에서 일을 시작하며 배우와의 사적인 교류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나 나름의 방패막이 누구와도 말을 놓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하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원칙.
배우들은 서로의 관계에서 나이가 많으면 오빠·동생 사이로 지냈지만, 나는 그들과의 포지션이 다르다. 업무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쉽게 용납되는 선이 아닐 수 있고 분명 부딪히는 지점들이 생길 게 분명했다. 그러한 상황에 내가 누군가를 오빠라 부르고, 누군가가 나를 누나라고 부른다면 호칭 안에 이미 존재하는 ‘서열 관계’가 업무적으로 영향을 줄 것 같았다. 그게 부담이 되었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이 나를 동생처럼 생각해 말을 함부로 하거나 무리한 부탁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마음과, 나 또한 나보다 어린 배우들에게 격의 없이 얘기하며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알고 있다. 당시에 나보다 나이 많은 배우들은 OO 씨라는 호칭에 조금은 불쾌해하거나 반감을 가진 경우가 있었다는 걸. 하지만 나 또한 나보다 한참 어린 스무 살의 배우에게도 꼬박꼬박 OO 씨라고 부르며 존대하고 존중하려 했다. 이에 공과 사를 구분하려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기만을 바라며 그냥 모르는 척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호칭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말의 호칭은 상하관계를 결정짓고 구분한다. 좀 더 “일을 잘하고 싶었던” 나의 선택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당시로서는 내게 최선이었다. 그러한 나의 예외 없는 호칭 정리는 누구에게는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없는 벽이었을 수 있다. 또 누구에게는 일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낼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회사를 떠나는 송별회 자리에서 어떤 배우가 한 마디 던졌다. “그럼 이젠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방긋 웃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래도 습관이 참 무섭다. “누나 누나” 하는 그에게 나는 아직도 말을 낮춰 편하게 대하질 못한다.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어정쩡한 어법이 사용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경조사를 통해서만 이따금 얼굴을 보고 있어 말이 더 쉽게 나가질 않는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동생 같은 마음으로 늘 활동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