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으면서, 주변에서 결혼 소식을 듣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게 멀고 낯선 개념이었다. 친구들이 결혼 준비를 하며 설레는 모습에 나는 그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물었다. "너네 팀 남자 배우들 많던데, 그 중에 괜찮은 사람 없어?"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그들에게는 단지 무대에서, 또는 연습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일 뿐이었다. 그들의 외모나 개인적인 모습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았고, 결혼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나 한 게 있다. "배우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 결심은 과거의 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처음 인턴으로 참여한 작품에서 만난 한 배우와의 일이 떠올랐다. 그 배우는 팀 내에서 여성들이 모두 좋아하는 대상이었고, 그의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우리 모두가 애정하는 캐릭터로서 존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비 오는 주말. 나는 평소처럼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무리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배우였다. 그는 나를 알아보며 다가와 함께 있는 친구들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내가 일하는 공연 팀의 직원이야. 그리고… 내 여자친구가 될 분이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술기운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의 태도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직설적이고 대담하게 다가왔지만, 점차 아무런 설명 없이 멀어져갔다. 결국 우리는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없었고, 이 일은 내 마음속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만들었다.
그 후로 나는 배우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섞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은 있을 수 있지만, 사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이 내 나름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배우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나 자신에게 규칙을 내린 것이다.
배우와의 관계에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첫 번째 원칙은 일터에서의 호칭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에게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OO 씨'라고 불렀고, 나이가 어린 배우들에게도 예의를 지키며 ‘OO 씨’라고 불렀다. 그 당시 그 호칭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것이 가장 올바른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를 지키며도,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존중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국 그 호칭은 내가 일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기 위해, 또 업무적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나갔다.
시간이 흘러, 퇴사를 앞두고 회식을 하던 자리에서 한 배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호칭 때문에 우리 사이에 조금은 벽을 느꼈나 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누나, 동생으로 가깝게 지냈고, 여전히 중요한 동료로,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고, 우리의 관계는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해 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과 경계선이다. 감정이 얽히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다.
"배우 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가치를 존중하라." 이 말은 내게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일과 인간관계에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되었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가며 사람들과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나간다면, 그 누구와도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신뢰가 내가 하는 일의 기초가 되어, 언젠가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감정적인 얽힘을 피하고, 단호하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은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나아간다면, 그 관계는 더 깊고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배우로서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일상에서 지켜야 하는 인간적인 자세는 다르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존중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배우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교훈은 내게 그 누구와도 건강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침이 되어, 나의 일과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