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붕대를 감아가며 부서져라 공연하는 배우들의 노력이 그 보상을 받으려는 좋은 조짐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작품에 인지도라는 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는 공격적인 지방 투어와 해외 마케팅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넌버벌 공연이기에 언어의 장벽이 없고,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공연이 동시다발 이뤄지니 내 업무량도 늘었다. 연습 배우 관리도 내 몫이었다. 평일 오전 학생 단체 관람도 점점 늘어갔다.
아침 10시, 11시 공연은 배우와 스태프 모두에게 정말 최악이다. 새벽녘에 별을 보며 집을 나서 김밥 수십 줄을 사 들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선 겨우 잠만 자는 하숙생이 된 지 오래였다. 극장에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스타킹에 구멍 났는데 여분이 없어요~” “파스 좀 사다 주세요~” 이런 사소한 요구들이 비일비재했다. 가끔씩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배우·스태프를 관리하기는커녕 그들의 ‘시다바리’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점차 자존감이 낮아지니 실제 그들의 마음 한편에도 나를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으로, 혹시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마음속에 좀 벌레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맙다는 표현에 깊은 마음의 저편에는 나에게 뭔가 부탁하려는 저의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들이 나를 갉아먹었다.
살다 보면 나의 선의가 상대방에게 온전히 선의로 전달되지 못할 때가 있다. 거기에 내 책임은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 마음속 찌꺼기가 있을 때 그러하다 생각한다. 투명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는 오지랖 넘치는 내 마음도 마냥 착하게만 보일 것이라고.
그러니 나도 시선을 바꿔야 했다. 공연 시작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사러 나설 수 없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충분히 그 부탁에 응해줄 수 있는 상황에 있으니 내가 움직이는 것이 마땅했다. 누구라도 빠르게 움직여 상황의 결핍을 채워 모자람이 없게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것이 나로 인해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른 아침, 오전 공연을 앞두고 모두가 새벽부터 집을 나서느라 빈속에 공연장에 도착했으니 주린 배를 채우고 힘을 내 에너지 넘치는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밥 한 줄일지언정 이왕이면 맛있고 따듯한 식사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부지런히 일찍 움직이는 누군가의 수고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내 일에 대한 가치는 내가 결정할 거야.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런 나의 역할도 꼭 필요한 거야. 힘을 내자! 너는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그렇게 버텼다.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마치 최면을 걸듯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내가 버텨내지 못할까 봐, 욱하는 마음에 그 자리를 박차 버릴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필사적인 자기 위로 따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믿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의미를 찾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자만이 다른 큰일 앞에서도 쉽게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런 시절이 있기에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의 배우들에 마음을 쓸 수 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무대 크루들의 노력을 누구보다 응원한다. 업무 보조를 하는 어시스턴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나의 수고를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봐 주던 이들이 있었기에 나 또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극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고 수시로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다니는 나에게 자신의 아랫사람 부리듯 가볍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 입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역할과 위치를 알고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며 존중해 주었던 이들이 곁에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