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를 온몸에 붙이고 붕대를 감은 채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들. 극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찬란한 무대의 모습이지만, 그 무대를 위해 배우들이 견디는 고통과 수고는 상상 이상이다. 나는 그 치열한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땀과 눈물, 그리고 근육통이 뒤섞인 리허설 현장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어느 날, 리허설이 끝난 후 배우들이 의자에 털썩 앉아 숨을 고르는 순간, 나는 그들의 얼굴에 그동안 겪어온 무수한 고통이 스쳐 가는 걸 느꼈다. 이들이 이렇게 무대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관객들은 그저 화려한 조명과 완벽한 공연만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치열한 노력과 인내가 있었다.
오픈런 공연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관객 수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인지도도 쌓였다. 우리 회사는 공격적인 지방 투어에 이어 해외 마케팅까지 기획했다. 작품이 가진 장점은 분명했다. 넌버벌 공연이라 언어의 장벽이 없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에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었다. 덕분에 동시에 여러 팀이 운영되었고, 나의 역할도 급격히 확대되었다. 연습 배우를 관리하고, 캐스팅 조율을 맡고, 평일 오전 학생 단체 관람 대응까지 도맡았다.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흘러갔다. 나는 점점 스케줄에 밀려 어느새 내 하루는 ‘일’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가족들은 물론 친한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도 부족해졌고, 심지어 끼니를 거르며 일을 마무리 짓는 날들도 많았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공연은 특히나 부담이 컸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해야 했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르곤 했다. 나는 늘 김밥 수십 줄을 들고 어둑한 새벽길을 걸어 극장으로 향했다. 집은 이제 잠만 자는 곳이 되었고, 하루 대부분은 극장에서 뛰고 또 뛰는 일의 연속이었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존재감이었다. 내가 없는 그 하루가 돌아가지 않도록, 그 자리에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스타킹에 구멍 났어요!” “파스 좀 사다 주세요!” 크고 작은 요청들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배우와 스태프를 관리하는 위치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김밥 셔틀’, ‘파스 담당자’, ‘응급 수리반’ 같은 역할이 더 컸다. 어느 순간부터 내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졌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내가 공부했던 것, 준비해 왔던 것들이 전부 무색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맛있는 김밥을 빨리 사 오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쳤고,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 시기, 마음속에 작은 벌레 같은 의심이 피어났다. '혹시 그들은 나를 그냥 심부름꾼쯤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진심은, 노력은, 의미는 다들 보지 못하는 걸까?' 타인의 호의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조차도 무언가를 부탁하려는 복선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의심은 나를 점점 더 위축시키고, 내 마음속엔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꾸기로 했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서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막 공연을 앞둔 배우나 스태프가 직접 무언가를 살 수 없는 상황. 그 절박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부탁은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버텨내기 위한 간절한 요청이었다. 그들은 그 요청을 통해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고, 다시 무대 위에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 부족한 것을 채우고, 하루를 무사히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른 아침, 빈속으로 도착한 배우가 김밥 한 줄로 에너지를 내고 무대 위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내가 들고 간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루를 지탱하는 연료가 된다. 그 순간부터는 김밥을 사는 일도, 파스를 챙기는 일도, 모두 소중해졌다. 내 손에 들린 그것들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일들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일의 가치는 내가 정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중요하지 않아. 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 역할 또한 꼭 필요한 일이야. 힘을 내자. 너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버텼다. 때론 최면처럼, 때론 진심을 담아.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았다면, 언젠가 욱하는 마음에 모든 걸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치열한 자기 위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는다. 아주 사소한 일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감사하는 사람만이, 커다란 일 앞에서도 자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결국 나의 일은 그 작은 노력이 모여 큰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무대 뒤의 보이지 않는 수고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무명의 배우에게, 어시스턴트에게, 그리고 땀 흘리는 무대 크루의 손길에 마음을 쓰게 된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 머물던 나를 소중히 여겨준 사람들의 진심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나는 보이지 않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누군가는 나를 가볍게 여겼지만, 또 누군가는 조용히, 말없이 나를 존중해줬다. 설명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를, 다시 한번 고맙게 여긴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김밥을 낑낑대며 들고 뛰던 나, 울음을 삼키며 파스를 사러 가던 나, 공연 시작 전 무대 뒤에서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던 나. 그리고 생각한다. 그 모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걸.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매우 소중하다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고를 꿰며 다시 묵묵히 나아간다. 김밥 셔틀, 그 이상이 되기 위해. 아니, 이미 그 이상이었던 나를 다시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