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우겨서 뽑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이 사람 뭔가. 아빠 회사 부도로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이제 공연계 일은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려 했다. 그때 감독님이랑 같이 나를 어르고 달래 잡아두었던 사수가 대뜸 사직서를 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조금만 참지…. 왜 그리 악수를 두셨는가. 이 회사에서 난 이제 누구를 의지하라고.
회사 내 팀별 간에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했다. 드러내 놓고 편 가르기는 하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얼핏 봐도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제작팀에 속해 있던 나는 마케팅팀 누구와도 단 한 번 사적으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얼굴 보면 인사만 데면데면. 특히나 그 팀의 리더는 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누구나 상대방이 자기한테 호의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대강의 눈치로 알 수 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훤히 보이니 나 또한 그가 영 불편했다. 이전날 어떤 접대가 있었는지, 배우 스태프들과 어떤 술자리가 있었는지 내 알 바 아니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는 직급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상해 보였다.
이 바닥은 그런 것인가. 출근 시간이 9시도 아니고 10시인데. 그 시간에 맞춰 나오는 사람은 여직원들뿐이었다. ‘빽 없는’ 사람들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나도 누구 지인으로 들어왔으면 출근 시간쯤이야 고무줄 마냥 내 마음대로 하고 있었을까.
나도 매일 늦은 밤 공연이 끝난 후 극장 정리 다 하고 10시가 넘어 퇴근이란 걸 했다. 월급 제때 못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치킨을 사 먹이고 ‘으샤 으샤’ 파이팅을 외쳤다. 속으로는 ‘조금만 더 버텨줘. 너희들마저 없으면 나 일 못 해. 제발 그만두지 마~.’ 이런 마음이었다. 사정사정하는 그 속을 누가 알까.
그런 나도 아침이면 꼬박꼬박 알람 맞춰 일어나 정시에 출근하기 위해 애썼다. 제발 당신들도 일찍 일어나서 출근 시간만큼은 좀 지키란 말이다! 속으로는 무슨 말을 못 할까. 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만큼은 아니었다. 또 그런 마음이 하루 종일 가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컴퓨터도 없는 내 자리라고 명명된 곳에 앉아 곳곳에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면서 한 번씩 한탄하는 순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가장 부러웠던 학벌은 S대였다. 서울 예대. 나는 왜 굳이 ‘인 서울도 아닌 4년제’에 간 것인가. 배우·스태프가 그 동문 출신 천지였기 때문이다. 대표님을 비롯해 다들 선후배 관계로 친밀한 모습을 보이니 소외감이 느껴졌다. 학교 졸업하고 가장 부러워하는 학벌이 그곳이 될 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수 한 명만 제대로 있었어도, 그를 의지하며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나를 믿어 줄, 나를 케어해 줄 단 한 명의 존재가 너무도 아쉽고 간절했다.
그때 이후로,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제대로 된 사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늘 사수가 고팠다. 앞선 경험과 노하우로 나에게 일을 가르쳐 줄 그 누군가가. 아무도 없으니 늘 혼자 고군분투해야 했다. 의지할 것이라곤 책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은 책일 뿐이나. 이론과 실제 현장은 다르다. 그러니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며 호되게 훈련시킬지라도 그 누구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배우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빨리 성장하고 싶었다.
늘 혼자 길을 찾아야 했다. 남 모르게 ‘이불킥’ 많이 했다. 크고 작은 실수 앞에서 많이 부끄럽고, 자책도 많이 했다. 덕분에 난 조금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지금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애초에 워라밸 같은 거 꿈꾼 적 없다. 노동에 대한 아주 소소한 보상. 그것에 그리 마음 쓸 거였다면 이 업계에 발붙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하면서 늘 외로웠다.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내 편에서 함께 욕하고 공감해 주는 동료들은 있었다. 나는 그 이상의, 누군가의 존재를 간절히도 원했다.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에 대한 채움이 필요한지, 나를 향한 응원 못지않게 나를 향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때로는 혹독하게 트레이닝시켜줄 누군가를 절실히 원했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올라갈 때, 이만큼 했다고 이 정도면 좀 잘하지 않았느냐고, 칭찬해 달라고 귀여운 떼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음속에 짙은 그리움으로 남는 한 분이 있다. 광대와 같은 삶을 사시는 그분을 몹시 애정 했고, 존경했으며, 기대고 싶었다. 너무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전화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시면서도 시선을 어떻게 바꾸어 상황 정리를 해야 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시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됐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참 힘들었다.
후배들은 10여 년 이 바닥에 있으면 어떤 것이든 수월하게 결정하고 일의 방향성을 쉽게 확신하는 줄 안다. 내게도 늘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있었는데 말이다. 내년이면 20년 차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 손 따듯하게 잡아줄 그 누군가의 부재가 서럽기만 하다.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지금의 나를 애써 말하지 않아도 공감해 주기만 해도 좋겠다.
그래서 이제 막 공연예술계에 발 딛는 친구들에게 손 내미는 것이다. 나보다는 덜 외롭게 이 길을 갔으면 해서. 가뜩이나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 속에서 부딪히고 감정적 소비가 많은 곳이다. 기댈 누군가, 그 마음 알아줄 누군가 한 명만 있어도 어려운 일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다. 다음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일어나 이 길에서 버틸 수 있을 거다. 내 자그마한 손길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분명 의지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멘토로, 그렇게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