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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Sep 16. 2022

공연장 밖으로 질질질 끌려나가야했던

‘사짜’가 많은 세상. 여기저기 말로 사람들을 구워삶고 투자자들의 눈먼 돈을 탐내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많다.


입사 1년 차였을 당시, 회사의 재무 구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공연 제작비가 어떻게 충당되고 있는지, 현금 흐름에 대한 파악도 전혀 안 된 상태였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건 극장 건물 맨 위층에 투자금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부 사정을 투명하게 알 수 없는 하나의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상당히 의심쩍은 상태. 그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명분은 작품을 홍보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번 거슬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얼핏 듣기로는 우리 작품을 호시탐탐 꿀꺽하려는 듯한 심사가 보이는 투자자 중 하나였다. 그는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매표소를 지날 때마다 한 마디씩 거들고 예매 상황을 체크했다. 매우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내가 아주 못마땅해하는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었다.


극장 로비에 나와 있는 20대 여자 직원들에게 (언제 봤다고) 반말로 함부로 얘기를 하는지. 처음부터 계속 불편했다. 지금이야 어지간한 불편한 상황도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와 ‘자본주의 미소’를 나름 탑재하고 있지만, 당시의 난 경험 없고, 옳고 그름 앞에서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지는 않는 타입이었다.


그 사람과 우리 회사와의 관계, 그의 역할,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고, 내 기준에서 상식적인 선을 넘어가는 무례함을 보일 시, 어떤 것도 용납이 안 됐다. 그렇기에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지속적으로 눈엣가시가 되었다. ‘나이를 먹었으면 그 값을 제대로 하란 말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구시란 말이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나의 심사가 눈빛과 태도에 배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던 때다.


주말이었다. 낮 공연이 올라가고 안내원들만 극장 안에 두고 나는 로비에 나왔다. 티켓 매니저와 정산 상황을 체크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제의 그가 나타났다. 그날도 변함없이 예매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티켓(초대권)을 몇 장 빼 달라는 등 어떤 것도 전달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 얘기했다. 어쩌면 평소 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선이 이때다 싶게 표출됐을 것이다. 나는 전혀 하달받은 바가 없다며, 해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내가 당연히 못마땅했을 거다.


그는 갑자기 눈을 부라렸다. 어린 계집애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맞나 싶냐는 듯이 티켓 부스 안에 있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극장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다시는 이 극장에 발도 붙이지 말라고, 당장 나가라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곧 공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로비로 나온 관객들의 눈과 저녁 공연을 보기 위해 일찍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될까 걱정이 됐다.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내게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B가 뒤늦게 극장에 도착했다. 잠시 피해 있으라 했다. 나를 내쫓은 그는 충분히 더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는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조예와는 거리가 아주 먼, 무대를 그저 자신의 돈벌이로서만 생각하는 ‘사짜 기질’ 다분한 사업가였던 것이다. 아니 사업가란 말을 붙이는 것도 싫다. 이후 남자 직원들과 몸을 밀치고 부딪히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고 간밤에 대표님 이하 모든 직원들이 다 모이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했다.


대표님 나이 서른세 살 즈음이었다. 내 나이 서른세 살을 떠올리면 어떻게 그런 전쟁터와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방향을 잡고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있었는지 새삼 존경스럽다. 그때는 대표와 직원의 관계이니 한없이 크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됐다. 내가 그 나이를 지나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살다 보니 아무나 감당할 수 있던 자리는 아니었단 걸 절실히 깨닫는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을 거다. 사업의 영역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다. 그것도 모르고 감정적이고 일차원적인 사고로 상황에 대처하던 지난날의 내가 참 많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지나간 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때의 나를 바라보며 속이 참 많이 답답했을 대표님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한 번도 험한 말로 나를 다그치신 적이 없다. 젊은 나이에 그야말로 ‘성공’을 이뤄내는 사람의 그릇의 크기는 역시 다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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