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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Jul 15. 2024

두번째 입원권유

"입원을 하셨으면 합니다.."

몇번 고민하듯이 뜸을 들이던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다.

계속되는 반추로 후회를 하느라 불안이 커지고 있고 불안이 커짐에 따라 자살사고 또한 반복되어서였다.

자살사고는 점점 구체화되어 진료중 내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이야기에 주치의선생님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당황한 주치의를 보고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 하는 내가 나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최근 매일 내 머릿속에 있던 말들이었으니까.


입원의뢰서를 가지고 횡단보도 앞에 서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입원을 해야 할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라서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거구나...나는 나약한게 아니라 한심한게 아니라 아팠던거였구나.' 처음으로 내가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에서 받은 입원권유는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 임신이 잘못되었을때 나는 잘 걷지 못했다. 아니 잘 걷지 않았다.

걷지 못할꺼라 생각했고 걷지를 않았으니 다리는 약해져가고 짧은 거리에도 후들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고민끝에 정신건강의학과에 갔을때 선생님은 "지금 스스로를 벌주고 있어요. 아이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벌주고 있다구요."라고 말씀하셨다. 잠은 24시간 내내 거의 자지 못하고 가끔씩 피곤이 몰려오면 까무라지듯이 쪽잠을 자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이 지나자 망상사고가 시작되었다. 내가 걷지 못할것이라는 상상은 점점 구체화 되었다. 어느날 이유없이 걷지 못하게 되는 사람은 없으므로 나는 내가 특정한 병에 걸렸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었다. 망상이었다.


망상까지 와서 하루종일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자 그 당시 주치의 선생님은 입원을 권유하셨다. 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은 도저히 할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입원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것 같았다. 입원은 하기 싫다며 진료실에서 엉엉 우는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은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그래요, 우리 입원하지 말아요. 무엇보다 내가 입원하라 한것이 윤정님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걸 기억하셔야 해요. 내가 낫게 해볼께요. 잘 해낼수 있을꺼에요. 불안이 오고, 우울하면 매일 병원 대기실에 간호사들이랑 함께 앉아있어요. 함께 과자도 먹고 쥬스도 먹으며 여기에 매일매일 앉아있어요. 그렇게 우리 한걸음씩 나아져봐요."


그렇게 나는 첫번째 입원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래 진료를 받았다. 길었고 잘 낫지 않았다. 나아지는 듯 하면 재발을 반복해 그냥 우울과 불안을 나의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고 산지 10년이 넘었다.


그때 입원했더라면 어땠을까(이것또한 반추이구나.) 그러면 지리한 우울증과 불안증에서 벗어날수 있었을까? 반추따위는 하지 않고 나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오늘 입원의뢰서를 들고 유난히 몽글몽글 예쁜하늘을 멍아니 바라보는 일 따위는 생기지는 않았을까?  안그래도 조그만한 내가 오늘따라 더 작게만 느껴진다.


세상에는 우울증을 극복해낸 수 많은 사람들의 책이 있는데 그 책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었다. 나의 우울은, 불안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유쾌하다. 물에 끈적이는 까만 천을 온몸에 두르고 숨을 쉬어야 하는 기분인데 어떻게 유쾌하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오늘 할일을 한다.

하교 하는 아이들을 위한 시원한 간식을 준비하고,

며칠전 닭을 먹었으니 닭에는 질렸을 가족을 위해 소고기로 복날 특식을 준비하겠지.

귀가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 거리는 아이의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서 맞장구 쳐야지.

일하느라 피곤했을 남편에게 오늘도 고생많았다과 어깨를 두드려줘야지......

그렇게 뚜벅뚜벅 오늘 할일을 향해 걸어나간다.


내일은 알수 없지만, 나를 꽁꽁 감은 이 지리한 우울과 불안이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을 뚜벅뚜벅 걸어야지.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어떤 날은 사는게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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