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셋째 주
[이번주는 해외 취재 준비 관계로 오래전에 미리 써둔 글을 올립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슴도 소라게도 모두 살아남으려 애쓰는데, 왜 인간은, 왜 나는, 날 가장 지켜야 할 순간에 스스로를 공격하는 걸까? 남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가장 큰 천적은 나라는 걸."
드라마에서 미래와 미지는 각자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곧 스스로를 갉아먹죠. 스스로 가장 굳건하게 버텨줘야 할 위기의 순간에, 상처는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단순히 고개를 쳐들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약해진 상처를 갈기갈기 찢고 소금을 뿌리죠.
그렇게 몇 번이나 해지고 찢긴 마음을 곱게 수선한 뒤에야 '그래선 안 됐었는데..'라며 후회하는 장면들이 연이어집니다.
이건 만약인데요. 만약, 내가 실제로 미래와 미지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탄희 전 의원이 제게 이 책을 추천해 줬던 것처럼요.
상처받은 사람에게 추천해 줄 수 있을만한 책. 한걸음을 떼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북돋아 주는 책. <자기 신뢰>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신뢰라는 말은 참 진부하지 않냐고요.
지금껏 흥행한 자기 개발서에 이런 말이 천지빼까리일 텐데요.
심지어 최근 정치 비평가들에게 '사회적 신뢰를 대통령 직무 일선의 철학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대학시절 PTSD가 도지는 말까지 듣는 시대. 자기 신뢰라는 단어는 갈수록 아득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자기 신뢰를 꺼내든 건, 단순한 명제 즉 '내가 마지노선'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들의 현실에서, 손을 뻗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스스로이니까요. 강지영 전 아나운서가 유퀴즈온 더블록에서 했던 말("버텨, 그것밖엔 답이 없어. 버티면 분명 기회가 올 거야.")처럼요.
인간은 정해진 굴레를 무차별하게 도는 행성이 아니라, 스스로 자가발전하며 각기 다른 빛을 뽐내는 항성이니까요.
인간은 그 자신이 별이고,
정직하고 온전한 인간을 빚어내는 영혼은
모든 빛, 모든 영향력,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은 어떤 것이 되었든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다.
우리 행동은
우리의 천사,
선 혹은 악이며
곁을 조용히 걸어가는 우리의 운명적 그림자다.
물론 여기까지도 사실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고 당연한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다음 페이지에 들어서, 비로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성품을 견뎌야 한다.
성정. 동양철학에선 이걸 성정이라 했습니다. 하늘이 명령한 것이 성(性),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 도를 갈고닦는 것이 교(敎)육이라 했거든요.(결국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이 책도 공자의 주석이란 말인가..!!)
성품은 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추구미와 나의 성품은 다를 수 있죠.
그렇다면 이 둘을 합일시키는 과정이 결국 스스로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 말이 비로소 온전히 이해가 됩니다.
당신 자신을 믿어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
매 순간 자기 재주를 내보여라.
평생에 걸쳐 쌓아 온 누적된 힘을 보여줘라.
빌려온 남의 재주는 일시적이고 그나마 절반도 채 당신 소유가 되지 못한다.
각자는 조물주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을 가장 잘할 수 있다.
당사자가 그 재능을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또 알아낼 수도 없다.
회사에서 어느 자리로 승진하겠다, 어떤 성과(KPI)를 달성하겠다 등의 목표는 사실 모두 모방일 겁니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그다음으로 도착하는 사람 2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필시 또 다른 사람에게 따라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3, 사람 4...
좋게 말하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뛰어난 후배를 당해낼 수 없어 그만둬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독창적인 업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에움길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마지노선인 '나'로 돌아와 당당하고 굳건하게 뻗어나가야 한다고요.
모방은 때론 나를 찾는 여정의 첫걸음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끝에서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이탄희 전 의원이 (이 책을 권하며) 지었던 표정과 말투를 기억합니다. "이 책 좋더라고요..."
저는 그때 한 사람의 비애를 느꼈고, 한편에선 한 사람의 희망도 보았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게 그렇게나 많은 감정을 몰고 올 줄 몰랐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꿰매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이랄까.
저 역시 많은 상처들을 꿰매었던 기억을 담아 여러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 좋더라고요.
제목 : <자기 신뢰>
저자 : 랄프 왈도 에머슨
번역 : 이종인
출판 : 현대지성
발행 : 2021.04.01.
랭킹 : 자기 계발 부문 110위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