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둘째 주
이 책은 '수학의 껍데기를 입은 역사책'입니다.
이게 뭔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하시겠죠.
마치 우리가 골뱅이, 소라 껍데기를 버리고 내용물만 먹듯, 이 책에서 꺼내 먹어야 할 건 역사 그 자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우리 문화부장이 이 책을 버린(정확히는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합니다.
안 팔릴 것 같아서.
수학을, 그것도 수학의 역사 이야기를, 어느 누가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하지만 전, 그런 거에 또 환장하는 사람이거덩요. 종종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것들에 빠져버리니까요.
마치 뉴턴처럼요.
뉴턴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플라톤은 나의 친구이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나의 친구이지만,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진리다"라고 했다.
물론 이후에도 뉴턴은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매우 존경받는 동시에 부유했으며, 높은 관직도 역임했다. 조폐국 국장으로서 화폐제도를 개혁했고, 위조범을 가차 없이 추적해 처형시켰다. 뉴턴 인생의 마지막 30년은 물리학을 탐구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뉴턴은 존경받기라도 했으나, 전 그렇지 못하니 제가 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이런 외골수는 뉴턴뿐만이 아닙니다.
근대 철학을 열어젖힌 데카르트도 MBTI가 I(아이)였습니다. 그것도 극 I. 심지어 그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괴짜 I였죠.
데카르트는 수줍음이 많아 은둔 생활을 즐겼으며 "숨어 지낸 자가 값진 인생을 보낸 사람이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더 많은 평화를 찾고 싶어 종교적 갈등으로 분열된 프랑스가 아닌 네덜란드로 향했다.
철학과 학생들에게 데카르트를 말하면 벌벌 떱니다. 저도 치가 떨립니다.
왜냐면 너무 어렵거든요.
역사상 그런 철학자들이 몇 명 있습니다. 철학과 발작버튼이랄까요.
칸트, 헤겔 등등..
주로 독일계 학자들이 그렇죠.
유시민 작가가 그랬던가요.
"하.. 이 책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독일 책인가?" 하면 독일 책이었다고..
이렇듯 수학과에서도 '위상수학'을 수학과 덕후들이 선택한다고 하죠.
그 위상수학의 기초가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입니다.
뭐 대체로 이런 것들이죠. '당연한 말을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하나' 하는 것들이요.
유클리드의 <원론>에는 다양한 정의와 공리가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고 길이만 있다.', '서로를 덮는 것은 서로 같다.',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유클리드도 마찬가지로 외골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화가 전해질 정도니까요.
제자 중 한 명이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의 실질적 용도에 대해 질문하자, 시종에게 이렇게 명령했다고 전해진다. "이 소년에게 약간의 돈을 주게. 배움을 통해 이익을 얻고 싶어 하니 말일세.(야, 얘는 돈만 밝히니까, 그냥 돈 주고 내쫓아라.)"
그러니까 유클리드 앞에선 밥벌이라는 말 따윈 엄두도 못 내던 분위기였겠네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오일러는 수학에서만큼은 철저히 친절했습니다. 유머라면 유머(깔깔 유머집에나 나올만한)가 전해질 정도니까요.
오일러는 매우 독특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다. 열병으로 오른쪽 눈을 잃은 후 그는 "이제 덜 산만해지겠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력을 잃은 오일러는 <초급 및 고급 대수학에 대한 완벽한 가이드>를 자신의 하인에게 받아적도록 했다. 하인은 재봉사 출신이었는데, 수학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일러는 그런 하인조차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쉽게 다듬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유추해 봤을 때, 전설적인 수학자들에겐 괴팍하거나 극단적인 스토리가 주를 이룹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수학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며 발 앞에 있는 모래 위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한 로마 병사가 그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75세였던 아르키메데스는 "내 원을 밟지 마라!"라고 대답했다. 그게 아르키메데스가 살아생전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피식'하며 웃고 지나기엔 꽤나 심오한 뒷배경이 있습니다. 케플러의 이야기를 보죠.
케플러는 신앙심이 깊어서 신이 수학적 계획에 따라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계획을 이해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는 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서 불행했다"고 고백하며 이런 유언을 묘비에 남겼다고 한다.
"나는 하늘을 측정했고, 이제 땅의 그림자를 잰다. 영혼은 하늘을 향했고, 육신의 그림자는 여기 머무른다."
만물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이들을 이 끈적한 세계에 이끌었던 겁니다.
영국인 고드프리 헤럴드 하디는 "수학은 화가나 시인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워야 한다. 이 세상에 추한 수학은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가우스가 1부터 100을 더한 방법, 피타고라스의 정리 증명, 유클리드의 소수 무한대 증명은 수학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누군가에겐 심오한 아름다움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한없는 미련함으로 비춰지겠죠.
그러나 최소한 외골수 수학자들은 자기변명거리가 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건 겁니다.
수학적 대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다. 수학자가 직선을 말할 때, 반드시 종이 위에 있는 유한한 선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한히 길고 무한히 가느다란 관념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수학자에게 구는 만질 수 있는 모양이 아니라, 구의 중심점으로부터 거리가 특정 값의 반지름을 초과하지 않는 모든 기하학적 위치의 총체다. 수학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다.
즉, 불필요한 모든 것을 삼가고, 각각의 맥락에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생략된다. 수학자들은 본질을 이해하고, 정리하고, 새로운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기술을 발휘한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수학자는 '핵심적인 본질을 이해'하고 '연결고리를 이어가며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술자들인 셈입니다.
그러니 수학의 역사는 곧, 역사 그 자체입니다.
모든 것은 역사가 된다. 그중 특히 수학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자 아름다운 증명의 과정이다. 모든 것은 증명돼야 의미가 있다.
실제로 가우스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그게 무엇을 증명하는 것이지?"라고 반문했을 정도다. (중략)
수학이란 무엇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묻자면, '과연 수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짧게 답하자면 그건 바로 편견을 깨부수려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보다 작을 수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180도로 합쳐지지만, 공간이 휘어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안장형 곡면을 떠올리면 쉽다. 이러한 생각의 확장은 인류를 진화시켜 왔다.
인류는 이런 수학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림자에 숨어있는 수학자들을 빛내는 건 빚을 갚는 일이겠죠.
어디, 참회하는 심정으로 한 줄 한 줄 읽어보시렵니까.
제목 : <기나긴 수학의 짧은 역사>
저자 : 볼프강 블룸
번역 : 김재호
출판 : 에코리브르
발행 :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