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셋째 주
무더운 추석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회상에 따르면, 약 40년 전 추석은 '교련복을 입고도 덜덜 떨어야 했던 추위'였다고 하는데요. 교련복이 뭔지는 몰라도, 이번 추석은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였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이게 뭐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더랬죠.
추석 연휴를 맞아 나름 한산해진 산책길에서 돌아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절 때 겪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을 뜻합니다. 저 또한 명절증후군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이런 질문이 화근이었습니다.
너는 요즘..
젊은것들이 말이야..
그저 "노력 중이에요", "잘.. 되겠죠"와 '하하' 웃고 만 뒤, '김예슬'을 생각했습니다.
2010년 3월 10일(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는 자퇴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이 문장들을 처음으로 읽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죄송합니다. 이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온갖 부정의 언어들을 쏟아내며 그녀가 외친 건 이 한 문장입니다.
무언가 분명히, 대단히 잘못됐다.
그리고 그녀의 (이른바) '자퇴 선언'은 당시 각 포털사이트 1면, 아고라 메인, 각 대학 게시판, 트위터 등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심지어는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 경향신문 1면 등 주요 언론에도 보도됐죠.
20100311 경향신문發 <[사설] 누가 이 청년을 대학에서 자퇴하게 만들었나>엔 이렇게 써져 있습니다.
명문대 경쟁의 바늘구멍을 뚫고, 앞날이 창창해 보이기까지 한 김 씨는 그러나 세속의 허위의식에 저항하며 잘못된 대학에서 자발적인 탈주를 결행했다.
김 씨는 대자보를 통해 이 땅에서 대학생으로, 청년으로 제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비감하게 드러냈다. 모두가 청년들을 경마장이 아니라 푸른 초원에서 뛰놀게 해 줄 사회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때다.
어른들은 김예슬에 화답했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했죠.
그로부터 3년 뒤인 2013년 12월 10일(화), 그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 주현우 씨가 또다시 대자보를 붙입니다. 이른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그 대자보죠.
<안녕들 하십니까>
88만 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 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 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물론 이 대자보는 '철도 민영화와 파업 참가자 직위해제 논란, 경남 밀양의 송전탑 사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등이 주된 논점이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많은 논란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젊은 세대인 스스로를 향하고 있었죠.
이 대자보에도 기성세대의 자성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20131215 한겨레發 <[사설] ‘안녕 못하다’는 학생들 목소리에 귀기울여야>에 잘 드러나있죠.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기성세대들은 학생들의 주장이 사실 왜곡이니 선동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그들이 쏟아내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번 대자보 파문을 계기로 ‘모두가 안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성세대와 학생들이 힘을 합하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제 질문입니다. 오늘은 이때와 많이 달라졌나요. 지금의 청년들은 그 때와 달리 '대학을 거부'할 수 있고, '안녕'한가요.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화답하고 있나요. 자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밴드 자우림에서 베이스를 치는 김진만 씨가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에서 스치듯 지나가며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샤이닝이라는 노래가 나온 지 10년 됐나요. 이게 참 답답한 젊은이의 얘기잖아요. 그 당시보다 지금 더 잘 어울리게 돼가고 있어요. 그건 좀.. 슬프네요
그래서 오늘은 대학생들을 위한, 청춘을 위한, 명절 증후군 청년 환자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을 하고자 합니다. '젊은것들의 못 돼먹은 예의범절'이라고 치부하시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헤아려 주시면 어떨까요. <이동진의 독서법>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듯 '샅샅이'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행위를 다양하게 하자. 그 행위를 확장시키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샅샅이 사랑하면 책이 더 좋아집니다.
그렇게 샅샅이 살펴보면, 우리가 조금은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청년들이 귀에 에어팟을 꽂은 채 일하고,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고 반문하며, 텔레그램 딥페이크를 돌려보는 추악한 인간들은 아니니까요. 그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도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영화 <사도> 中)
이번 주엔 또다시, 보란듯이, 자극적인 숫자가 눈앞에 등장했습니다. 20240919 한국일보發 <3년 넘게 일도, 취업 준비도 안 하는 '그냥 쉬는' 청년 8만 명 넘어>에서 보듯, 손쉽게 8만 명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3년 넘게 일하는 것도, 그렇다고 취업을 준비하지도 않고 그냥 쉬는 청년(15~29세) 수가 8만 명을 넘어섰다. 학교를 졸업하고 3년 이상 취업하지 않은 청년 규모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같은 날 EBS發 <일도 취업 준비도 안 하고…3년간 '그냥 쉰' 청년 8만 명> 기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한 꺼풀 더 들어간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졸업을 한 뒤 3년 이상 취업을 하지 않고 있는 15살에서 29살 사이 청년층 숫자는 23만 8천 명.
이 가운데 취업 준비를 했거나, 육아 가사, 진학 준비 등을 제외하고 집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응답한 청년은 모두 8만 2천 명, 세 명 가운데 한 명꼴이었습니다.
미취업 기간별로 봤을 때 '집에서 그냥 쉰' 청년 비중은 3년 이상일 때가 가장 높았습니다.
반대로 취업 준비를 했다는 대답은 미취업 기간이 2년 미만일 때까지는 절반 이상이었지만, 3년 이상일 때는 34.2%로 점차 하락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직활동도 포기한 채 그냥 쉬는 청년들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EBS는 일도, 취업 준비도 3년 넘게 안 하는 약 8만 명의 청년을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만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한 발짝 더 깊이 들어와서 '왜 그런지'를 살펴본 겁니다. 절망스럽게도 그곳에 절망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3년 이상 취업난을 겪으면 그냥 쉬어버린다는 뜻이었죠. 2년 넘게 열심히 자기소개서와 스펙을 쌓았는데 어떤 회사도 받아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사회를 향한 배신감', '나를 향한 패배의식' 등이 한꺼번에 겹칠 겁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숫자를 단지 '8만 명의 청년=의지 없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까요.
빨간 모자를 쓴 해병 병장은 네가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 했고 김정은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노꾼 장혁이 오열하며 삶은 계란을 씹었고 개구리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안 젖을 수 없는 여기는 아마아마 아마존. 쿨하고 펀하고 섹시한 미소를 짓는 옆 나라의 정치인. 인생이란 역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끄덕). 둘리가 답했다. 아이 싯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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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中
현대차, 두산, LG전자 최연소 임원이자 27년간 마케터로 일해온 최명화 대표가 폴인과의 인터뷰(20230710 폴인發 <현대차, LG전자 최연소 임원 최명화의 커리어 강점찾기>) 말미에 갑자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깨진 건, 보고서지 내가 아니다” 이 말이 여러분을 구할 거예요.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고서나 결과물이 깨질 때마다, 내가 깨졌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에요. 백번을 깨져도, 보고서가 깨진 거지 내가 어떻게 깨집니까.
혼자 킥킥대고 웃었습니다. 깨진 건 내 지원서일 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요. 나를 떨어뜨린 회사들을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속으로 장담했습니다. 후회하실 것이라고.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