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첫째 주
킴 닐슨은 <장애의 역사>에서 장애라는 개념의 '사회적 추방 과정'을 뒤쫓는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퇴역 군인과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자가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이른바 '못난이 법(Ugly Laws)'을 통과시킨다. 1867년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1911년 시카고에 이르기까지 ‘병에 걸렸거나, 신체에 영구적이 손상을 입었거나, 몸이 훼손됐거나 어떤 형태로든 신체가 기형이거나 보기 흉하거나 역겨운 준재’들은 도시의 거리, 고속도로, 주요 도로, 공공장소에서 추방되었다.
다시 말해, 남북전쟁이 끝나고 정신장애를 포함한 온갖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존 공동체에 재편입됐고,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의심과 공포가 커졌다. 이러한 의심과 공포는 곧 장애라는 개념에 ‘의존’을 동치 시키면서 낙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배척되기 시작'했다. 고작 200년 전의 일이었다.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김순석(1984년 음독자살)
“김대중 대통령께. 이제 내 나이 35세. 우여곡절이 많은 장애인입니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그나마 거리에서 장사해서 돈을 벌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으려고, 힘이 들어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저와 같은 동료들 상처받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절망, 좌절, 희망이 없어서입니다. (중략)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건강하였다면 대학교 3학년이 될지도 모르고, 직장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 현실을 사랑할 수가 없고, 좌절밖에는 없습니다. (중략) 제가 이렇게 명동성당에서 그것도 추운 겨울에 텐트 농성을 결심한 것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비단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서부터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노점해서 먹고살면 되지. 왜 수급비 문제를 제기하냐고. 그런데 아무도 가난의 국가책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서...” -최옥란(2002년 음독자살)
저건 <고통 구경하는 사회>잖아.
개개인을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막연한 공감이 아니라 그의 탁월성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탁월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만이 가능한 가치를 육성하고자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열린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다.
몸이 변해야 한다. 그 변화는 구체적인 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깃들어'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평범한 일상의 질서를 살짝 변주하는 것만으로 기존에 닫혀 있던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배우로서, 무용수로서, 그 밖에 여러 역할로 등장한 다양한 존재는 세상에 대한 우리 모두의 예기치 못한 상상력을 촉발한다.
의식하면 어디를 가든 나와 다른 몸의 존재 방식을 상상한다. 실체로서의 구체적인 관객을 의식하기 시작해 정말 피부에 와닿게 다가온다
접근성은 우리가 어떤 압도적인 이념에 매혹될 때, 우리가 자칫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구성원이나 다양한 맥락에 대해 문을 닫고 자아도취적 황홀경에 빠져 어딘가로 떠밀려갈 때 우리를 붙잡는 닻이다.
더 폭넓게 현실의 여러 면모를 고려하고 타인과 접속해 제한적인 선택지를 벗어나,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할 수 있다.
박경석은 자신의 행동(지하철 시위)이 불편을 야기한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불편은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에 눈을 감는 당신들도 궁극적으로 그 테러에 동조하는 것일 수 있다는 그의 질타이다. 이런 상황이 더 비문명에 가깝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것이 박경석을 쉬게 하는 길, 그리고 우리가 겪는 불편을 덜어내는 길이다.
제목 :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저자 : 김원영
출판 : 문학동네
발행 : 2024.07.01.
가격 : 17,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