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책'임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l or review Dec 13. 2024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2024년 12월 둘째 주

돌베게
현대 의학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아예 지워버렸고, 인간은 이제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이제 삶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피할 수 있으며 피해야만 하는 재앙이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다.

본문 中


의사는 신이 아니어야 한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의료산업이라는 유령이.

의사는 신(神)이다. 오래전부터 항간에 떠돌던 소문에 의하면, 의사는 이미 신이었다(20181120 JTBC發 <[앵커브리핑]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길바닥에 내쳐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애들이 법대 간다. 이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애들은 의대를 간다. 질투하지 마라. 걔네들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제일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의사라는 신이 인간에게 계시를 내린다. "검진을~ 받으라~" 그러면 인간은 쪼르르 달려가 '검진 의식(Ceremony)'을 받는다. 하지만 '정말 이 의식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환자는 '검진 자체의 적합성'을 따져 묻지 않는다. 당연하다. 신의 계시는 곧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의사가 받으라면 받는 거고, 까라면 까는 거다.

이충원 동강병원 건강관리센터 과장은 2011년 <건강검진, 종합검진 함부로 받지 마라>라는 책에서 우리나라를 ‘검진 공화국’으로 정의했다. 정밀 검사를 통해 심장 동맥 경화를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한 사람들은 검사를 하지 않고 지켜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약을 먹고 더 많은 시술을 받지만 생존율에는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환자가 오래도록 서 있을 자리는 없다. 신은 환자와 딱 3분간 조우한다. 저자 김현아는 이 상황을 "진찰은 3분 만에 엉망으로 해치우고 그 시간에 검사로 이윤을 내는 구조"라고 진단한다.

2012년에서 2021년까지 우리나라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심사 건수 통계를 보면 전체 의료 재정 중 진찰료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0년간 6.7% p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검사비는 4% p 증가했다. 환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진료는 부실한데 검사만 많아진다’는 의심을 방증하는 데이터다.


실제로 약 4달 전, 광화문 인근 이비인후과에 간 적 있었다(스트레스로 인한 돌발성 난청 증상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 의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들이 그득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거의 맨 끝에 접수했다. 의사는 내 앞에 대기하던 약 20명을 단 50분 만에 해치웠다. 명분은 "직장인들 점심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피차 서로 질질 끌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검사 시간은 한 2분, 진찰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끝나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돌아와서도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신(神)은 이렇게 돈을 번다. 많은 신도를 동원한 박리다매 방식이었다.

공공의료기관들의 대규모 적자에서 보듯 낮은 진찰료 때문에 적정 진료만으로는 병원이 유지되지 않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사립 병원들에서는 그 손실을 검사로 메우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고 검사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시간은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한 불신이 겹겹이 쌓인 틈을 첨단기계와 화려한 검사 기기들이 오늘도 꾸준히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심지어 신은 더 비싼 최첨단 기계를 선보이며 환자들을 각성시킨다. '돈 생각하시지 말고', '특별히', '건강이 최우선이니까' 등의 미사여구로 설득한다. 환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다. "아멘"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측면은 ‘이득에 대한 과장’이다. ‘최첨단’이나 ‘혁신’이라는 말이 ‘열려라 참깨’처럼 의료 재정 곳간을 여는 마술의 주문이 되는 것을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신기술 위주로 재정이 쏠리는 경우 인간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의료는 쉽게 왜곡된다.



신의 시작은 정치였다


환자는 일종의 쳇바퀴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 


"검사부터... 아, 다 받으셨어요? 그럼 다음엔 이 검사.. 이후엔 이 검사를... 아..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그럼 또 이 검사.. 아 딴 병원에서 받으셨어도 안 돼요. 검사를 저희 병원에서 한번 더 받으셔야 진료를 보실 수 있으니까..." 같은 말을 듣는 게 일상이다. 


피를 수차례 뽑고, 탈의를 했다가 입었다가, 오랫동안 대기했다가 잠시 신(神)을 조우하고 다시 오랫동안 대기하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쏟아부어야 한다. 이렇듯 구원의 여정은 험난하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렇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김현아가 말하는 단초는 바로 정치였다. 

독재 정권에 의한 압제를 오래 받아온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의료에 간섭하는 것이 처음부터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당시 의료 보장이 되던 북한과 비교했을 때 남한의 체제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와 강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치로 묶기 시작한 매듭을 비정치적인 방법으로 푸는 것은 어려웠다. 김현아가 되돌리고자 한 여러 문제들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나는 관절염 수가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수가를 만드는 정식 루트인 심평원의 결론은 ‘절대 불가’였다. 학회를 동원하여 제대로 된 관절 진찰 수가가 왜 필요한지 악을 쓰며 어필하고 다녔는데 누구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김현아는 몇 가지 오해와 우려되는 문제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로봇 수술 기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 '안전한 약품에 집착하다간 금값인 약을 받아들 수도 있다는 우려' 등은, 그러나 결국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뉴스를 틀면 나오는 이른바 '의사들의 목소리'는 이렇게 왜곡된다.

일반인들이 로봇 수술 기계(왓슨)에 대한 오해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는다.

1. 왓슨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것처럼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환자의 정보는 의사가 입력해야 한다.

2. 왓슨은 이미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임상시험 데이터가 적은 경우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아무리 치료 옵션이 많아도 마찬가지다. 왓슨 정확도의 기준은 인간 의사다. 왓슨의 정확도가 95%라는 말은 인간 의사 결정과 95%라는 뜻이다. 정답은 인간 의사다.

3. 왓슨의 판단을 의사의 결정 없이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임상시험 데이터 없이 왓슨의 판단을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다. 사고가 나면 책임도 인간 의사가 진다. 왓슨은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아니다.

4. 왓슨의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게 가장 무섭다. 대부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마찬가지로 왓슨이 어떤 약제를 추천하게 되는지 그 과정은 투명하지 않다. 어떤 원칙으로 결과를 도출했는지 알기 어렵다.
2006년 FDA가 공인되지 않은 약제의 사용을 제한하는 프로그램을 발동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약 값이 한 알에 9센트에서 4.85달러로 5000% 넘게 오른 것이다. 안전성 데이터가 충분히 구비되지 않은 약제의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약제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가격 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료 시간을 늘려주세요


그래서 '너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What's the point?)'라는 물음에 답하겠다.


김현아가 최소한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어 하는 문제, 바로 '진료 시간 확대'다. 의사랑 더 오래 얘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 건지, 어떻게 치료할 건지, 부작용은 어떤 게 있는지, 완치는 가능한지 등등.


얼마나? 최소한 15분. 진료 시간이 단 2분만 늘어도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서구 선진국 의료 시간 15분을 벤치마킹 해보자는 거다(핵심이 아닌 성차별, 선진국의 우월성 등 비본질적인 문제를 논하지 말자).

환자들이 남자 의사보다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을 때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자 의사가 남자 의사보다 환자와의 관계 형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심리적 상담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의학적 소견을 전달하는 능력에는 성별 차이가 없었다. 단지 여자 의사가 남자 의사보다 평균 환자 진료에 2분 더 할애할 뿐이었다.

즉, 의학적 소견 전달 못지않게 시간을 들여 상담을 하는 것이 실제로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건 우리나라 의료에서 가장 허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무너져 버린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서구 선진국의 기준 의료 시간인 15분 진료가 정착할 수 있도록 진찰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겐 더 친절한 신(神)이 필요하다. 암울한 미래에는 더욱 그렇다. 의료가 비즈니스가 된 우리나라에서 신의 시간은 더욱 쪼개질 것이다. 쪼개고 또 쪼개진 그 파편을 비집고 들어가 환자는 진료를 받을 것이다. 더 짧아지고, 더 비싸지는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쪼개진 신의 시간에 온전한 인간의 자리는 없다. 말 그대로 산업화가 우려된다는, 김현아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쯤에서 '의료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인간이 필요 없는 의료가 도래할 수도 있다. 땀 한 방울을 넣으면 수십 가지 정보를 제공해 주는 AI가 나타날 수도 있고 당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99% 정확도로 알려주는 알고리즘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없는 의료의 시대에는 환자 또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듯 기술이 지배하는 의료의 시대에 인간은 그저 하나의 이상 수치로 환원되고, 그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맥락은 지워진다.




제목 : <의료비즈니스의 시대>

저자 : 김현아  

출판 : 돌베개  

발행 : 2023.08.07.  

가격 : 15,300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