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다섯째 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인셉션>을 한 번만 보고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헌법 전문도 마찬가지다.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 투성이다. 하지만 굳이 인용한 까닭은 대런 애쓰모 글루의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맥락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가 EBS <위대한 수업>에 출연해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설명한다.
빈곤과 번영의 장기적 원인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왜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살까'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대런 애쓰모글루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시상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 국가 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데, 그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뭔지 알아보자.
최대한 쉽게 풀어보았다.
[현실] GDP 기준 미국 vs 아이티 약 50배 차이다. 1800년대 애덤스미스가 경제학을 창시하던 때(당시 최대 격차 약 4~5배 수준) 보다 더 커졌다. 벤치마킹은 커녕 국가별 경제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논의의 출발점] 왜 이렇게 차이가 벌어졌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역사 및 데이터 비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남긴 나쁜 점, 남북한 경제발전 차이 등을 데이터로 살펴보니 답이 나왔다. 포용적 사회 제도(재산권, 공평한 경쟁, 투자, 기업 활동이 보장되는 제도)가 있는 사회는 성공했다. 반대로 착취적 사회 제도(시장에서 인센티브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강압적인 제도)가 있는 사회는 실패했다.
[핵심 주장] 경제를 좌우한 건 정치다. 사회 제도의 차이가 돈벌이 수준을 가른다.
[꼬리 질문과 답변] 그럼 빨리 포용적 정치제도로 바꾸면 되지? 밍기적댈 게 아니라? 도대체 왜 착취적 제도가 여전히 용인되는 거지?
그건 소수의 기득권층이 경제 자원과 기회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적 사회제도가 착취적 경제를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그리고 공생한다. 이렇게 착취적 경제/사회 제도는 서로 악순환한다.
[해결책] 포용적 사회 제도는 포용적 경제 제도와 선순환할 것이다. 완벽히 포용적이거나 완벽히 착취적일 순 없다. 그러니 그 틈바구니를 잘 깨치고 나오면 경제발전할 수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책 <총 균 쇠>가 세상을 휩쓸었던 적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본 도서로 명성을 떨치며 더욱 불티나게 팔렸다. (내가 기억하는) <총 균 쇠>의 핵심은 "경제적 차이는 환경적, 지리적 우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었다.
총균쇠의 시작은 대런 애쓰모글루와 유사하다.
파푸아뉴기니인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네 백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발명하고 개발해서 큼지막한 화물들을 뉴기니로 가져올 수 있었고, 왜 우리 흑인들은 못 했죠?"
일종의 열등감이랄까.
파푸아뉴기인은 '너와 나'를 넘어 '우리와 너네'를 가로지르는 차이를 설명하고 싶었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도출하고 싶을테니까. 요술램프 지니처럼 문제를 짠하며 해결해주길 바랄테니까.
아쉽게도 제레드 다이아몬드 MBTI는 '확신의 T'다. 성패를 가른 건 우연이라고 했다.
'우연히' 균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있었고,
'우연히' 지리적으로 곡물이 잘 자라는 땅과 기후였다고 설명한다.
길-게.
대런 애쓰모글루의 주장은 정반대다. 경제 격차는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거다(아,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 추천사를 쓴 건 안 비밀이다). 묘하게 다르다.
대가들의 사상적 견해 충돌에 나도 참전한다.
돈 잘 벌면 성공한 건가
성공한 국가는 돈 잘 버는 나라, 실패한 국가는 돈 못 버는 나라?
정말?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도대체 뭐지?
대런 애쓰모글루는 대한민국(남한)을 북한과 비교해 '돈 잘 버는 성공한 나라'로 치부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김현성 <자살하는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사회를 '사멸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로 비유한 장면을 보자.
하지만 2024년 현재 한국 사회를 지켜보면, 우리 주위엔 마케팅의 용도가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공포가 만연해 있다. 하나의 공동체가 결국 인간이라는 물리적 요소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존속의 필요조건인 구성원의 수효란 측면에서 우리는 국가가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사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취약점은 '지속가능성'이다. 이 나라가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까. 전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면서 최근 몇 년은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미 훌륭한 정치제도를 택하였다고 해서 향후 경제적 부유까지 장담할 순 없다. 우리 경제를 떠받드는 노동력 자체가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포용적 제도'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병통치약 같은 건 아니지 않나.
즉, 한 나라의 성패를 경제라는 잣대로 너무 단순화시키는 건 아닐까.
같은 포용적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 사이의 격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재 착취적 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속박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아닐까...요?(쓰고 보니 약간 싸가지 없어 보여서 존댓말을 추가했다.)
그래서 (재미없지만) 다시 헌법 전문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우리는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추가해야 한다는 등의 '앞부분'에 주목하고 있었다.
여전히 온갖 논란을 빚고 있는 앞부분을 벗어나 이제는 헌법 전문의 뒷부분에 주목해 볼 때다.
헌법 전문 뒷부분은 '그나마 포용적인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국가 그 자체를 사랑해서는 안 되고, ‘국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사랑해야 합니다. 국가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모두를 파멸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헌법적 가치 때문입니다.
이효원 <일생에 한 번 헌법을 읽어라> 中
제목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 :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번역 : 최완규
출판 : 시공사
발행 : 2012.09.27.
가격 : 25,200원
카테고리 : 정치일반
쪽수 : 704쪽
랭킹 : 사회/정치 부문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