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민 Jun 08. 2023

마흔 살 공황장애로 백수가 되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 지금까지 잘못 살았나?

  나는 올해 만 마흔 살이다. 지금까지 하던 모든 일을 그만뒀다.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개월째 쉬고 있다. 아내가 이렇게 말해줬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당분간은 쉬면서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좀 다녀와. 혼자서 오랫동안 멀리 다녀와도 돼.”  

   

  이 말을 듣고도 기분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버킷리스트를 추천하기도 하고,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뤄가면서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직업이 없이 순수한 나로 돌아와 보니 그게 뭔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서 오랫동안 멀리’ 여행을 다녀와도 된다는 말에서 “나 버리고 어디 가려고 하나?”라는 쓸데없는 두려움만 생겼다.

  공자는 마흔 살이 불혹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그런데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판단이 흐려졌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 지금까지 잘못 살았나?”      


  나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맨날 술에 취해 살다가 일찍 돌아가셨고, 돈 벌어와서 맛있는 거 많이 사준다고 떠났던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쯤이 돼서야 돌아오셨다. 그 덕에 어릴 때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이후부터 어머니와 살았다.

  어른들은 항상 ‘공부 열심히 해라. 기술 배워라.’고 가르치셨다. 당신들께서 살아온 삶에서는 대학 나와서 사무직에 취직하거나 기술을 배워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었다.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범하게 살아가려면 그게 정답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도 가고 기술도 배우려고 ‘공과대학’을 갔다. 대학에 가서도 남들 다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면서 놀러 다닐 때 자격증 시험 준비하면서 고3 같은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2학년이 되고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 가기 시작했다. 나도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하나 보게 되었다. “육군3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습!”이라는 문구와 함께 하얀색 장식털이 붙어있는 각진 모자를 쓰고 푸른색 제복을 입은 멋진 생도의 모습이 있는 포스터였다. 그 멋에 반해서 복학생 형한테 저기는 뭐 하는 데냐고 물었다. 그 형은 마치 아빠가 아들에게 자기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는 말투로 설명을 해줬다.      


- 3학년으로 편입하는 사관학교인데, 학비도 무료이고 의식주가 모두 지원된다.

- 심지어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매월 20~30만 원 정도의 용돈도 준다.

- 졸업하면 육군 장교로 임관해서 직업군인이 될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국비로 해외 유학도 보내준다.    

 

  졸업해서 취업을 해도 되지만, 앞으로 3년간의 등록금과 생활비가 더 필요했다. 그 돈은 어머니가 포장마차로 벌어주시는 돈이었다. IMF가 끝난 직후여서 졸업하는 선배들도 이력서를 50군데, 100군데씩 내고 다니던 때였다. 사관학교를 가면 나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어지고, 취업도 보장된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안 해도 된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사관학교에 가고, 장교가 된 나는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가난한 덕에 집안에서 내가 군대를 간 첫 번째 남자였다. 게다가 장교로.


  그렇게 시작한 군생활을 14년이나 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전역을 하게 되었다. 그때도 나는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나의 성격, 적성 이런 것들 보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보험영업에 뛰어든 것이다. 사교성이 좋거나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군에서 훈련된 것이 있으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일도 잘 됐고 돈도 잘 벌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온몸에 쥐가 나는 것 같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 지금까지 잘못 살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