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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n 08. 2023

주변 사람들의 허울 좋은 위로를 극복하려면?

개소리에 흔들리지 마라.

  한 강연에서 강사가 퍼온 사진을 보고 참석자 모두가 ‘빵’ 터졌다. ‘1990년대 보통의 30대 아저씨’라는 제목이었다. 담배를 30년 넘게 피운 것 같은 검게 그을린 피부와 밝게 빛나는 넓은 M자 이마에 어색하게 웃고 있는 31세 담배인삼공사 직원, 현장에 온전히 투신한 완벽한 얼굴 주름에 덥수룩한 머리와 촌스럽고 두꺼운 금색 사각 테 안경을 장착한 36세 건설회사 과장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남자들이다. 한참 웃었지만, 10살의 나에게도 아저씨는 서른 살만 넘으면 그렇게 보였었다. 마흔 살 정도면 세상에 통달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공자 아저씨도 불혹이라며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까지 했잖은가.


  지금 나는 백수고, 아내와 11살, 9살 두 아들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얼렁뚱땅 살았다거나 몇 년 놀았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 흔하다는 대학 재수도 안 했고, 사관학교에 갔기에 졸업과 동시에 직업군인으로 일했다. 제대할 때도 유급으로 취업 준비하는 기간 10개월이 있었음에도 6개월 만에 보험회사로 출근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살아왔고 그게 답인 줄 알았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 신경 쓰지 말고 선생님 말씀만 잘 들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라고 했다. 군 선배들은 ‘장교는 책임지는 자리’라고 했다. 보험회사 지점장들이나 선배들은 돈이 최고라고 자존심 같은 거 내려놓고 돈만 많이 벌면 끝이라고 했다. 인쇄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월급을 위해 야근과 주말 근무는 당연하다 했다.


  그러니 권력을 얻거나 돈을 얻거나 하는 종류의 성취를 얻더라도 항상 ‘나는 누구인가’,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 많이 묻기도 했다. 군대에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보다 더한 신파극이 없다. 보험회사에서는 더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다 자기 이야기다. 누구나 고민하지만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지금을 살아내느라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이번에는 제대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동안 승진이나 학위로, 돈으로, 심리검사와 상담으로, 사주팔자로, 성공한 사람의 책이나 강연으로 찾아보려고 했지만 부족했다.      



  공황장애로 모든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당시, 그리고 이후에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거다.

  “운동해, 안 하면 안 돼. 가만히 있지 말고 산책이라도 해.”

  어떤 이는.

  “그래? 왜? 힘들었구나. 힘내”

  마치 매년 12월마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 같은 말이다. 한마디로 모두 위로를 가장한 개소리다. 그럼에도 메시지를 받았기에 답장은 해야 한다. 그들에게도, 내 마음에도.


  그들에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똑같이 대충 답해주면 되지만 내 마음에는 제대로 답을 해줘야 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니 매번 하는 레퍼토리처럼 어린 시절 상처 탓을 했다. 다음으로 군대를, 나라를, 이 시대를 탓했다. 그러다가 별것도 아닌 걸로 아내에게 화를 내고 삐딱하게 대했고, 이것은 곧바로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분을 못 이겨 집에서 뛰쳐나가고 맥없이 아파트 주변을 걷다가 다시 들어오곤 했다. 아무리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외부의 핑계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핑계를 점점 더 강하게 합리화해 나가기 위해서 불만의 대상을 찾게 된다. 그 대상이 보통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 아내처럼.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좀 다른 말을 했다.

  “고혈압 있는 환자가 혈압 내리고 싶다고 내려지나요? 심장 멈추고 싶다고 멈춰지나요? 운동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부끄러운 게 아니고 정상이세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래서 더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건 맞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죠?”

  “뭔가를 빨리해내야 한다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가장인데,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지난번에 했던 검사 결과에도 보시면 책임감이 강하시고, 완벽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강박적인 면도 있어요. 이런 경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구분하셔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 내 책임이고 내가 돌봐줘야 하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요.”


  이게 현실인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저 책임감 강하지 않아요. 어릴 때 탓하고 있잖아요. 아내한테 화도 내고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상황에서 빨리 뭔가를 해내려고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까지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버거우니까 책임감을 애써 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책임감이 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셨지만 반대로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을 거예요.”

  “……”

  “지금까지는 책임감, 강박적인 생각이 각성된 상태로 있다가 폭발된 것 같아요. 그것도 지속되면 정체성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건 아닙니다. 조절이 안 됐을 뿐이죠. 앞으로는 조절하는 것을 저와 함께 익혀 가요.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봐야 해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절실하게 얻고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를 빼고 다른 데서만 답을 찾고 있었다. 가정환경이 어려웠다는 것, 부모님 불화가 있다는 것, 군에서 진급을 못했다는 것을 포함해서 나의 지난 시절 자체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탓했다. 심지어 내가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고 선택했던 일조차도 환경 탓하면서 ‘내가 피해자’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나만 너무 이상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도 아무 데나 침 찍찍 뱉고 다니면서 막살아볼까 했다. 그렇다고 누가 받아주겠나, 괜히 아내와 아이들한테 짜증 내면서 집에서만 깡패 노릇, 왕 노릇 할 뿐이다.


  책임감은 압박감이 되기도 하고, 압박감은 책임감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그만큼 행복하기도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시련을 겪고 불행한 삶을 살았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고, 품위이다.”


  이제는 나의 어렵고 힘든 삶이 아니라 ‘나의 자부심과 품위’를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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