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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n 21. 2023

포기와 선택, 빨리 퇴사하고 싶다.

포기와 선택에도 "순서"가 중요하다!


  대학교 3학년이나 돼서 인생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학교에 부적응자로 분류됐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절실하게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책임감-눈치- 때문에 때려치우지 못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성공하고 싶어졌다.     




  위대한 장군들의 책을 보면 책임감, 사명감, 외로운 고뇌, 그 끝에 오는 성취감, 애국심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유행하는 자기 계발서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다 정답인 줄 알았다. 책과 영화에 나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말 없고 소심한 성격을 진중한 모습으로 만들어갔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전쟁을 다 경험한 베테랑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실제로 무게감 있고 신중한 성격이 돼가는 군 생활 5년 차의 어느 날, 한 선배가 자기 사무실로 조용히 불렀다.     


  “곧 보직 끝날 때 돼가는데, 다음 자리 어디로 갈래?”

  “보내주는 데로 가는 거지. 뭐. 제가 가고 싶다고 보내 줍니까?”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나 자리가 경력이 되고 승진(진급)이나 성공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장교들도 모이면 다음 보직 어디로 갈지는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선배는 그날도 보직 이야기로 말을 시작하면서 1급 비밀문서라도 되는 것처럼 꽁꽁 싸매서 보관해 둔 서류철 하나를 펼쳤다.


  “너 그러면 나중에 진급 못해. 지금부터 관리해도 될까 말 깐데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니냐? 투철한 군인정신? 그런 사람을 어떻게 골라내는데? 너라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겠냐? 이제 너도 보내는 대로 가는 게 아니라 찾아서 다녀야 돼."     


  생각도 못 했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직무 관련) 자격증도 따고 교리 개선, 전투 발전 제안 같은 것도 해서 표창도 좀 받아놓고 토익점수도 기한 도래되기 전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그래야 이 놈이 군의 발전에 기여했구나, 영어도 잘하니 한미 연합 방위를 하는 데 능력 발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무식하게 현장에서만 구른다고 투철한 정신을 가진 군인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대충 인사받은 후부터 계속 얼굴은 보지도 않고 대충 던지듯이 말했다.


  "자, 여기 파일에 있는 진급한 사람들 경력을 봐. 야전부대에서만 굴러먹다가 진급한 사람 있냐? 다들 너처럼 어릴 때 위탁교육 선발돼서 대학원 다니고 미국 가서 교육받고 와서 야전에 잠깐 있다가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야.”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혹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투철한 군인정신 같은 것을 서류만 보고 진급 심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리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치더라도 결국은 기록의 싸움이다. 책에서 말하는 이상과 달랐다.


  근데 이 선배는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 주는 걸까. 선배는 아이디어만 있는 꺼리가 몇 개 있었다. 그 아이디어를 교리 개선 제안서로 만들어 오라고 했다. 전화와 말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컴퓨터 타자 속도도 느리고 글재주도 없었다. 내가 독후감 경연대회 1등 했던 걸 보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불렀단다. 어쨌든 선배한테 받은 족보를 가지고 계획을 다시 세웠고, ‘투철한 군인정신’을 ‘기록’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그 제안서도 표창장과 상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선배의 인맥과 나의 문서작성 능력으로.     




  진급 심사에 들어가는 해가 왔을 때쯤 내 기록은 어디다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누가 봐도 ‘이런 걸 언제 다 했어?’라는 말이 나왔다. 지휘관 하는 동안은 우수부대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교리 개선, 전투 발전 제안, 기술 개선 제안 등 제안서도 우수자로 선정돼서 표창과 상장도 꽤 받았다. 거의 매년 훈련이나 리더십과 관련된 칼럼, 독후감 등을 써서 군내 발행 책자에 기고도 했다. 업무 관련 공저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대학원도 졸업했다. 진급 심사에 들어갈 때 개인이 작성하는 참고자료가 있는데 중요한 자료임에도 대부분 적을 게 없어서 고민한다. 난 칸이 모자랄 정도로 넘쳤다.      


  그런데도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이나 진급에 떨어졌다. 부하와 얽힌 어이없는 일 하나로 하극상하는 장교가 돼서 퇴직(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때였다면 하극상은 즉결 처분되는 죄목이다. 진급이 될 리 없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속담이 있다. 근데 그 공든 탑은 개미굴 하나로 무너진다고 했다.   

   

  몇 년 더 근무할 수도 있었지만 미리 퇴직했다. 언제 나갈지 확정된 상태에서 더 기간을 채워 근무하고 싶지 않았다. 스물한 살에 장교가 되겠다고 결정하고 군인으로 성공만을 보고 달려왔다. 그 목표가 사라진 이상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대기업에 갔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비슷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갈 때는 시골에서 집안 형편 다들 어려웠고 누구 하나 진로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집안에서 상황에 맞게 성적이 허용하는 대로 대충 골라 갔다.

  

  하지만 한 번 그렇게 들어갔으면 성공하고 싶어 진다. 임원 한번 해보고 싶고 장군 한 번 돼 보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살지만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는 매달 주는 월급과 주말만 바라보고 사는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그나마도 낫다. 작은 회사인 경우 어려우면 월급도 못 받고 사장과 사장 가족들 뒤치다꺼리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 뭐 하러 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주변에서 다 말리는 데도 일찍 퇴직했다. 파리 목숨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서른여덟 살이 됐다. 아내와 어린아이 둘이 있다. 스물한 살 때와 다른 차원의 책임감과 자랑이 되어야 할 집안이 생겼다. 더 문제는 14년 동안 만들어 온 투철한 군인정신을 가진 장교를 사회에서는 원치 않았다. 아니 인정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적지도 않은데, 부양가족이 있는데, 연봉 많이 주고 익숙한 일자리를 찾고 싶은데, 군 경험을 써먹고 싶은데, 기왕 전역하게 된 거 다른 사람보다 성공하고 싶은데 하는 욕망들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상만 보고 일찍 퇴직했다가 현실에 부딪혔다.      




  뭔가를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과 포기는 연결되어 있다. 뭘 포기할지 먼저 정하면 선택만 남기에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그런데 선택을 먼저 해버리면 이제는 포기할 일만 남는다.


  스물한 살 때 나는 포기할 것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를 선택해 나갔다. 서른여덟 살의 나는 퇴직이라는 선택을 먼저 하고 나서 포기할 것들을 고민했다. 지금의 나는 포기 못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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