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이 이것뿐인가?
교단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다. 퇴직 후에도 한동안은 일하며 지냈다. 버스 회사 야간 당직을 서고, 식당에서 주차 관리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런 일도 힘들어졌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 하루는 손주들을 돌보는 일로 채워져 있다.
아침이면 손주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맞춰 데리러 간다. 집에 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준다. 시간이 흐르면 저녁이 되고, 아이들의 부모가 돌아오면 내 하루도 끝난다. 처음에는 이 역할이 반가웠다. 손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무엇보다 내가 여전히 가족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는 일이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배우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자신의 노후를 준비했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고, 동네 문화센터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함께 다니자는 권유도 있었지만, 나는 바쁜 일도 없으면서, 손주들 돌보느라 시간 없다며 거절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그런 제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배우자는 나와 상관없이 자기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한때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모임에서 “바쁘다”는 말을 몇 번 했더니, 어느새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도 많았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도 예전처럼 반갑게 받아줄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내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곤, 초등학생 손주들이 전부였다.
그제야 문득 생각이 들었다. 손주들은 자라고 있다. 언젠가는 내 손길 없이도 혼자 등교하고, 학원도 다닐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지만, 나는 멈춰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혼자 집을 나섰다. 손주들 등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평소 다니지 않는 길로 발길을 옮겼다. 집에서 창밖으로 멀리 보이던 텃밭도 있고 논들이 보였다. 텃밭에는 다 말라비틀어진 잡풀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고, 논에는 수확이 끝난 벼의 밑동만 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논이었다.
어릴 때는 저 논에서 놀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논에도 이름 모를 생명들이 숨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허허벌판처럼 보이지만,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새파란 벼가 자라날 것이다.
나는 손주들에게만 매달리며, 정작 내 삶을 돌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밭과 논처럼 내 삶도 변해가는 것 같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논에서도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손주들을 돌보는 순간도 내 삶의 한 순간이었음을 잊었다. 벼가 자라고 있든 비어보이는 땅으로 있든 논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다. 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손주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공원으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은 어색한 시간이었지만, 분명 어제보다는 나아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