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

by 이서명


퇴직 후에도 한동안은 바빴다. 30년 넘게 몸담았던 재난안전관리 업무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도 회사에서 촉탁직으로 5년을 더 근무했다. 경험이 많으니 그만큼 내가 필요한 곳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면서 회사는 더 이상 내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았다. 법규도, 시스템도 많이 변했다. 빠릿빠릿한 젊은 인력이 많아졌고, 내 역할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일해 왔고, 오랜 경력과 노하우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 리 없었다. 젊은 친구들 일 하는 거 보면 아직 눈에 차지도 않는다. 분명 나 같은 경력자가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일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퇴직 후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난다고들 하지 않나. 나는 바로 구직에 나섰고, 경험을 살려 재난안전 관련 일을 다시 해보려고 했다. ‘정년 퇴직자 재채용’이라는 공고들도 있었지만, 정작 지원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연령이 너무 높으시네요. 죄송합니다.”

나와 비슷한 일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강사나 자문위원 같은 역할로 재취업을 했지만, 그런 쪽은 고졸 학력인 내가 접근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경비직을 시작했다. 전혀 다른 일이었지만, 최소한 사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를 하면서 주민들을 상대하는 일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며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3년을 일했지만, 용역 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됐다. 경비 업계는 대부분 용역업체에서 근로계약을 해서 근무지로 파견을 보내는 식이다. 그런데 용역계약을 매년 하거나 2~3년 단위로 하는데, 기존 업체가 아파트와 마찰이 생겨 계약이 해지됐단다. 고용승계도 60대 초반 직원들만 하고 65세 이상은 전원 해고 됐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방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비직을 그만두고 난 이후부터는 정말 취업이 쉽지 않았다. 어디선가 다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력을 살려 다시 관리직을 알아봤지만, 나이가 많다고 면접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한 번, 두 번 불합격을 받다 보니 점점 기준을 낮춰가게 됐다. 다시 경비직이나 단순 관리직을 알아봤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이제 경비나 단순직 쪽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게 됐다.

아직 큰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비 부담이 점점 커졌다.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도 미안스럽다. 그렇다고 일할 곳이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제야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예전에는 늘 사회가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했고, 내 경험이 존중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원을 거듭할수록 ‘나는 이제 끝난 걸까?’ 하는 생각이 커졌다. 아침에 일어나 지원서를 쓰면서도, 손이 떨렸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정말로 있을까?

취업센터 상담사도 나를 걱정했다. “계속 시도해 보시면 좋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시도할수록 더 깊이 실망하게 됐다. 나이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심경을 상담사에게 이야기하니 기운내시라고, 차분히 마음먹고 지원해 보시면 된다고 안심시켜 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나 같은 늙은이 누가 쓰기나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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