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애가 된다고 하더니.
퇴직한 지 1년이 넘었다. 40년 동안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어둠이 가시기 전 도로에 나섰고, 하루 수십 번씩 정거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몸이 기억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도로에 나갈 필요도, 일정에 맞춰 움직일 이유도 없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자유롭고 편했다.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가끔 공원을 걷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봤다.
나는 아직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혼자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무릎이 시큰거렸다. 전에는 한 시간쯤 걸어도 거뜬했는데, 요즘은 20분만 걸어도 숨이 찼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면 다리가 무거웠고, 장바구니가 유난히 손에서 미끄러졌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직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봉지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귤이며 우유팩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주워 담으려 허리를 숙이는데, 허리가 뻐근했다. 그 순간 지나가던 젊은 사람이 얼른 다가와 물건을 주워주었다. “괜찮으세요?” 순간 당황했다. 그저 물건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저 사람 눈에는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보였던 걸까.
지하철을 탈 때도 그랬다. 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는데 몸이 휘청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얼른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여기 앉으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앉으면 나도 모르게 인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제 그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한동안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전에는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타시면 손잡이를 잡아주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씌워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도움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어색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나도 나이 들었고, 내 몸도 변했다. 예전처럼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손잡이를 내밀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나도 모르게 굳어 있던 어깨를 풀었다.
다음번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으면 그냥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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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께서 브랜드 커피를 한 잔 사가지고 상담실로 들어오셨다. '젊음 사람들은 이런 커피 좋아한다면서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앉으셨다. 그리고는 마트며, 지하철에서 겪었던 일들을 한 참 이야기 하셨다. 한 시간쯤 지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동안 고마워소.'라고 인사하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