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비었던 옆자리는 늦은 오후, 머리가 새하얀 노부부로 채워졌다.
짐은 배낭 하나가 다였다.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늙은 부부의 모습은 양이 자신의 미래이길 바라던 풍경, 그대로였다. 마지막 배경이 111병동이라는 점은 비극이지만.
“아유, 이런 데는 처음이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수.”
“아이쿠. 당장 자네가 마실 물도 하나 없네 그려. 옆에다 좀 물어볼까?”
차르륵. 커튼이 열리고 평범한 두 노인의 얼굴이 양과 금희를 들여다봤다. 양은 얼른 항균 마스크를 썼다.
“반가워요, 우린 의정부에서 왔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딸애가 아파서 시골에서 올라왔어요.”
“아유. 엄마가 애가 타겠어. 얼른 나아야지.”
“시~계바늘처럼~ 돌고 돌~다가~ 가는 길을.”
갑자기 어디선가 흥겨운 트로트가 울렸다. 바깥노인의 휴대폰이었다. 노인은 지그시 화면을 보더니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그래, 우리는 잘 도착했다. 병실도 좋고 엄마도 오늘은 괜찮아. 그래, 여긴 걱정 말고 회사일 봐라. 저녁에 보자.”
열린 커튼에 신경이 쓰이는 금희였지만 바로 닫기엔 애매했다. 다행히 노인은 짧게 통화를 끝냈다.
“안어른이, 아프신가 보네요?”
“아이쿠. 어떻게 알았나?”
“통화를 들으니 그런 것 같아서요.”
“눈치가 빠르구먼. 급성백혈병이라는데, 우리는 그게 뭔지도 잘 몰라. 이 사람이 80대라 치료가 힘들 거라는데, 걱정이야.”
“급성도 종류가 많대요. 그중에서 뭔지 들으셨어요?”
“M… 뭐라던데? 의사들의 설명은 죄다 어려워서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저기, 미안한데 물 좀 한 잔 얻을 수 있을까?”
“그럼요, 어르신. 여기요.”
“아유, 고마워요.”
“안어른은 이제 끓인 물만 드셔야 하니 이런 전기 포트를 하나 사셔서 배선실에서 끓여 오시면 되고, 바깥어른께선 보호자라서 이 안에서 아무것도 드시면 안 되니 나가서 드시면 됩니다.”
“아이쿠. 아무것도 모르고 실수할 뻔했구먼. 알려 줘서 고마우이.”
“이따가 애비한테 전기 포트를 하나 사 오라고 해야겠어요.”
“내가 지금, 문자를 넣음세.”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고 폴더 폰을 열어 문자를 쳐 나갔다. 자판이 큰 효도 폰이었다. 호로록. 옆에서 안노인이 목을 축였다.
“아유, 차 맛이 참 좋아요.”
“옥수수차예요. 끓여 놓고 자주 드시면 신장에 좋….”
금희의 말은 노부부의 주치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끊겼다.
“아,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나 보네요. 쉬세요.”
오래 열어두면 양에게 안 좋을까 싶어 이 기회에 슬그머니 커튼을 닫는 금희에게 노인들은 고갯짓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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