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Feb 22. 2022

웰컴 투 항암월드 66화

실화 소설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 양의 퇴원이 결정됐다.

 

  “하, 양 씨. 골수 검사의 결과가, 아주, 양호합니다. 내일, 퇴원하지요.”


  안심해 교수는 밝은 얼굴로 양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다.


  이날 양의 과립구는 1,068, 백혈구가 2,090으로 어제보다 살짝 올랐다. 혈색소도 8.1에 혈소판은 2만 6천으로 수혈도 피해 갔다.


  지난밤에는 땀도 덜 흘려서 환자복을 3번만 갈아입어도 될 정도였다. 오전에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의 축하까지 받자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정말로 집에 가는 듯했다.


  “하양 님, 0퍼센트가 나왔다면서요?”


  “네.”


  “와, 진짜구나!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근데… 0퍼센트가 나오는 경우가 드문가요?”


  “음… 교과서적으로는 가능한 숫자예요.”


  “교과서적으로는요?”


  “네. 교과서적으로는, 모든 항암 치료의 목표가 바로 0퍼센트니 치료가 아주 모범적으로 잘된 거죠. 하지만 아시겠지만, 인생이 교과서적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여기, 111병동에서는 더 그렇죠.”


  “아….”


  드르륵. 커튼이 열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안노인이었다.


  “아유, 정말 잘됐어요! 그럼 이제 퇴원해서 몸만 잘 추스르면 낫겠어.”


  “아가씨, 축하해. 어머님도 참 고생이 많으셨어. 우리도 저렇게만 된다면야….”


  바깥노인이 안노인의 몸으로 들어가는 항암제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할머니께서도, 힘내세요.”


  “고마우이.”


  이틀 새 더 늙어버린 노부부의 진심어린 축하에 양은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진짜였어, 진짜!”


  간호사가 아직도 믿기 어렵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갔다.      






  이날 밤, 오랜만에 세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양, 내가 기도하고 있어.”


  짧지만 깊은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


  천주교가 모태 신앙인 세하는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 주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믿음을 잃었다. 매일 성당에 가서 두 손을 모아 기도했지만, 뇌종양 수술을 한 세하의 할아버지는 끝내 세하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신을 버렸다고, 세하는 언젠가 양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불교에 마음이 기운 아버지와 교회 목사인 고모부, 대부분이 유교인 집안 친척들 사이에서 신에 대한 자유로운 시각을 가지고 살아온 양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으로 보였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럴 수는 없어.
니체 말이 맞아. 신은 죽었어. 아니면 잠들어 있거나.


  만에 하나, 신이 살아 있다고, 깨어 있다고 하자. 신이라고 언제까지 사람의 정신을 세상에 잡아둘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한 어린 세하의 마음이 너무나 애틋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음을 잃었던 세하가… 기도를 시작했다, 다시. 양의 가슴이 벅차면서도 뻐근하게 아팠다. 


뇌종양도 암이 아닌가. 인생에서 가장 아끼던 사람을 암으로 잃어 본 세하에게 또 암 환자라니… 믿음을 버릴 만큼 힘든 시간을 또다시 겪게 만들다니… 세하의 기도와 달리 나마저 죽는다면 세하는… 아니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신을 버렸다던 말에서조차 양은 신에 대한 세하의 어렴풋한 애정을 느꼈었다. 


세하는, 제자리로 돌아간 거야. 그냥 그런 거야.


  세하의 기도에 담긴 마음, 그건 어떤 의미로든 세하에게 양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었다. 양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 내일 퇴원해. 기도, 고마워.”


  세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오, 너무 잘됐다! 그럼 우린 언제 볼 수 있어?”


  지금 당장 보고 싶어.


  그렇게 쓰려다 양은 까슬까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심장정맥에 연결된 관이 꽂힌 오른쪽 가슴과 끝없는 생리, 40일도 넘게 씻지 못해 냄새나는 몸… 만나지 못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당장은 어려워. 조금 나아지면, 연락할게.”


  “그래그래. 언제든 말해. 내가 혜화로 갈게! 휴… 걱정 많이 했는데, 퇴원한다니 정말 다행이다!”


  “응, 고마워.”


  너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지?


  양은 고민하다 세하가 SNS 프로필에 올렸던 책, 『두 개의 심장』을 주문했다.     






  이날 밤, 13일에 걸친 대한대병원의 파업이 끝났다.


  노사는 월 1만 5천원의 임금 인상, 장기 계약직의 내년 내 정규직 전환 등에 잠정 협의했다. 공공 의료의 실천을 위해 부르짖던 의사 성과급제 폐지나 병원의 확장 공사 철회에 대해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웰컴 투 항암월드 65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