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밀그램 실험
70년대에 스탠포드 대학의 모의 교도소 실험이 있었다면, 그 이전인 60년대(1961)에는 밀그램 실험이 있었다.
뉴욕에서 태어나 정치학을 공부하던 스탠리 밀그램은 박사 과정에서 갑자기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뉴욕의 퀸스 칼리지에서 정치를 공부하며 정치가를 희망하던 그가 갑자기 하버드 심리학과 대학원에 원서를 넣은 것이다. 물론 하버드에서는 심리학에 아무런 기반 지식이 없는 밀그램을 거절했지만, 밀그램은 끈질긴 노력 끝에 특별학생처(일종의 특별전형)의 학생으로 선발되어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하버드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뉴욕시립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밀그램이 예일 대학에서 일하던 어느 날,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라 불리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진술서를 보게 되는데 아이히만은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기 때문에 나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란 것이었다. 사실 아이히만은 나치에 입당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상부의 명령' 만으로 수백만을 죽인 학살자가 되었다는 것이 밀그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실험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밀그램 실험이라 부르는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었다.
그는 우선 20~50대 사이의 남성 실험 참가자 40명을 모집했는데, 그들에게는 이것이 학습에 관한 것이라고 안내했다.
'한 피실험자는 다른 피실험자중 한 명에게 목록에 적힌 단어를 물어본다. 이는 기억력 측정을 위한 실험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었다.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연구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학생들이 이미 외웠다는 낱말의 목록을 주면서 학생이 정확하게 대답을 하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전기 충격을 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전기 충격의 단계는 총 30단계이며, 16v부터 450v까지 약 15v씩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를 높이라고 안내했다. 이때 학생 역할의 연구팀원들은 이미 전기 충격을 받아 봤는데 엄청나게 아팠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참가자들과 학생은 서로 볼 수는 없고, 목소리만 들을 수 있도록 한 상태로 실험에 들어갔다.
처음엔 곧잘 대답하던 학생들은 점점 답을 틀리게 되었고, 충격의 강도는 높아졌다.
특히 40단계 중 15단계만 되어도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소리쳤으며, 20단계가 되면 아예 기절한 척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도 연구팀은 실험을 강행하라고 명령하며 실험의 책임은 자신들이 진다고 참가자에게 알렸다. 결국, 일부 참가자들이 극심한 저항을 했지만 약 65%의 참가자들은 학생들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최고 단계(450v)까지 전기 충격을 올렸다고 한다.
즉, 밀그램은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일정한 환경 안에서는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은 흔히 말하는 조작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실 밀그램의 이 실험은 총 24가지 테마로 각각 다른 조건과 환경, 그리고 배우들을 투입해서 이루어진 실험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참가자들의 저항이 있었고 그때마다 각본을 바꾸어 가며 실험이 진행되도록 꾸민 것이다.
당시의 원본 녹음을 확인해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떤 참가자가 학생의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저항하자 연구팀이 가서 상태를 확인하는 척하고 학생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안심시킨다거나, 실험에 저항하는 참가자에게 무려 25차례나 시험을 진행하라고 압박을 하거나, 스스로 학생과 역할을 바꾸겠다고 하는 참가자들을 강제로 저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실험 참가자들이 이 실험이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기도 했다는 것이다. 녹음된 것같은 비명 소리에 이상함을 느끼기도 했으며, 학생이 불쌍해서 학생 몰래 약한 전압으로 충격을 주었는데도 더 큰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 학생을 보면서 참가자들은 트릭을 알아챈 것이다.
그럼에도 밀그램의 실험은 지난 60년간, 이 실험이 갖는 의의와 시사성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나치강제수용소의 경비대가 있다."는 바뀌지 않는 심리학적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끊임없이 인용돼왔다.
이 실험의 진실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 실험과 앞서의 스탠포드 대학의 모의 교도소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환경에 휩쓸려 악을 행할 때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이나 시스템, 혹은 주위의 강압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악마로 변하는 이 실험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과연 휩쓸린 다수일까? 아니면 끝까지 평범한 일반인으로 남은 사람들일까?
이 위대하고 잔인한 실험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 특별한 영웅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