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쌍둥이 실험
지금까지 동물을 이용하여, 또 사람의 심리를 수단으로 삼아 펼쳐진 잔인한 과학과 심리학 실험을 다루었다. 그리고 잔인한 실험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치와 일제의 731부대이다.
우선 나치가 신봉했던 우생학 자체가 끔찍하고 다양한 여러 실험의 단초가 되었음을 밝히며 가장 잔인했던 실험 중 하나인 쌍둥이 실험을 이야기해 볼까한다.
일명 '죽음의 천사'로 불렸던 요제프 멩겔레는 사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그는 음악, 예술, 과학, 의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졌는데, 뮌헨 대학에서 우생학의 권위자인 테오도르 몰리슨에게 지도 받으며 유태인 하층민들의 인종적 차이점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승 덕분에 우생학에 빠져든 그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연구소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문을 통해 약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멩겔레는 나치 당원을 거쳐 1938년 히틀러 친위대에 들어가게 된다.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무관으로 발령받은 멩겔레는 단 21개월의 기간동안 '죽음의 천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는 수용소의 유태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유전학 연구를 실험했다. 그는 아이들의 눈에 화학물질을 주입하여 눈동자의 색을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하였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을 아리아 인종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특히 관심이 많았던 것이 쌍둥이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수용소에 있는 동안 1,500쌍 이상의 쌍둥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멩겔레는 쌍둥이들을 모아 놓고, 한 쌍의 아이들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검사하고 기록한 뒤 한 아이에게 독약, 세균, 화학 물질 등을 투입한 뒤, 투입하지 않은 아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실험하고 기록하였다.
또한 쌍둥이가 외모 뿐만 아니라 뼈나 장기까지 비슷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쌍동이들을 데려다 마취약으로 잠재운 뒤 바로 몸을 해부하여 보기도 했으며, 쌍둥이의 장기나 혈액을 서로 교환하면 어떻게 될지 직접 실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샴쌍둥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그는 쌍둥이들의 팔이나 다리 상체와 하체를 잘라내고 둘을 이어 붙여서 인공적인 샴쌍둥이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관찰하기도 했다.
또한 남녀 쌍둥이를 강제로 근친교배를 맺게한 뒤 그 내용을 기록하였고, 때로는 이 남녀 쌍둥이의 생식기를 서로 바꾸어 교체하기도 하였다.
멩겔레가 잔인한 것은 그의 실험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실험실이 아닌 밖에서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친절한 군인아저씨였다. 멩겔레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옷을 자주 선물하며 늘 웃는 얼굴로 대했다.친절한데다 선물까지 주는 멩겔레를 수용소의 아이들은 '멩겔레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멩겔레를 따라 실험실에 간 아이들은 모두 실험대에 올려져 잔인한 실험을 받았으며, 그 실험이 끝나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멩겔레가 직접 죽이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성격을 잘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아이가 구강궤양으로 고통받자 멩겔레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긴 시간동안 치료를 해주었다. 결국 그 아이는 회복되었는데, 얼마 뒤에 멩겔레에 의해 가스실로 보내졌다.
멩겔레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쌍둥이 실험이었지만 그밖에도 임산부나 난쟁이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있는 사람들도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특히, 갓 아이를 낳은 엄마의 유방을 테이프로 꽁꽁 묶어서 젖을 주지 못하게 한 다음에 아이가 죽는 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비츠 가족은 10명의 자녀중 7명이 왜소증을 앓는 난장이였다. 루마니아 출신의 예술가 가족인 이들은 끌려오기 전에는 릴리풋 곡예단이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하였다. 멩겔레는 그들을 '나의 난쟁이 가족'이라고 부르며 아꼈는데, 결국 그들의 눈에 염산을 주입한다든가, 귀에 뜨거운 물이나 얼음 물을 넣는다든가, 일부러 상처를 낸 뒤 감염의 속도를 기록한다든가 하는 실험을 하였다.
이처럼 끔찍한 실험을 자행한 멩겔레는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독일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자 멩겔레는 미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가명을 써서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강제수용소에서 40만 명을 살해한 혐의로 1급 전범으로 결정된 그는 바이에른 주에서 4년 동안 농부 행세를 하며 숨어 지내다가,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남미로 넘어가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30년 넘게 잘 살다가 수영 중에 심장마비에 걸려 1979년, 68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볼프강이란 이름으로 무덤에 들어갔는데, 이후 1991년이 되어서야 그를 추적한 이들이 결국 무덤의 DNA를 분석하여 그가 '죽음의 천사'인 멩겔레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악인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일까? 1970년대에 70 가까운 나이로 죽은 멩겔레나 얼마 전 90이 넘은 나이로 죽은 전 모씨나 참 보는 이들에게 씁쓸한 결말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