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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기적 Aug 11. 2024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

"이상과 현실"


나 홀로 첫 자취


시골의 작은 종합병원에서 꿈꾸던 대학병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걱정과 근심이 앞섰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오지 않는가.

하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이다. 그동안의 커다란 고민과 걱정, 불안이 무색한 것이 되게 말이다.


본가에서 입사한 직장까지는 차로 3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이곳에 지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까지 어떻게 가나 싶어 지원을 망설이던 순간도 있었지만, 취업이 간절하던 터라 일단 도전을 해봤던 것이 가장 빠른 합격 소식을 들려준 것이었다.

일단 상황에 던져지면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생존 본능’이지 않을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하게 만드는 방법은 ‘환경’을 바꾸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은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작은 물에 있을 때랑 큰 물에 있을 때 한계가 다르고 목표하는 지점이 다르듯이 말이다.


시골의 작은 종합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6개월 동안 일하면서 퇴사까지 딱 천만 원을 모았다. 모으던 돈의 앞자리가 바뀔 때 책임감도 덩달아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모아두었던 돈으로 낯선 타지에서 첫 자취방을 구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낯선 지역으로 떠나 혼자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방을 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홀로 자취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혼자서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계약까지 하고 왔는지 싶었으나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첫 자취방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직장 코앞에 있는 오피스텔에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원룸가격의 1.5~2배 가격이었다. 졸업 후 백수로 지내는 기간 동안 돈이 없다 보니 그때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들었다. 전망 좋고 깨끗한 풀 옵션 방이라는 첫 자취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현실은 창문을 열면 바로 옆 원룸과 마주한 벽뷰의 직장까지 15분 걸어가야 하는 무옵션 원룸이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지불하는 돈이 덜 드는 방향을 선택했다.


벽뷰를 자랑하는 원룸(그래도 햇빛은 잘 들어왔다)
내돈내산 첫 자취방


아빠 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3시간가량 걸리는 타지로 첫 자취와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 한 칸뿐인 원룸이었지만 이사 첫날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홈플러스에서 가구 쇼핑을 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에 조립식 가구로만 방에 채워 넣었다. 전자레인지도 6개월 후에야 들여놓았으니 6개월까지만 해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나 자신도 몰랐다.



Welcome to hell


이사 후 바로 다음날부터 2주간 원내 교육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몰랐던, 가장 좋을 때였다.

교육 마지막 날 부서배치가 이루어졌다.

앞서 동기 없이 혼자 부서 배치를 받은 동기들을 보았기에 나는 제발 같이 가는 동료 한 명만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나는 총 세 명의 동기와 함께 부서 배치를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부서 배치 후 새 유니폼과 신발을 받아 들고 해당 부서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전에 일했던 데서는 간호사 실습복을 입어서 병원 유니폼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새로운 유니폼, 새 간호화, 때타지 않은 사원증을 목에 걸치고 세 명의 동기들과 나설 준비를 했다.


"우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진 한 번 찍고 나가자"


한 동기의 주도로 이루어진 셀카 촬영. 이 말은 곧 씨가 되었다. 한 달도 채 안 되어 트레이닝 도중 한 명의 동기가 가장 먼저 퇴사를 했다.

서바이벌과도 같은 생존기의 시작이었다.



동기와 함께 퇴근하면서 마신 커피에 써 있는 문구를 보고 위로를 받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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