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지옥 같던 스파르타 트레이닝
'안녕하십니까'
먼저 들어온 동기들은 군대라도 온 것 마냥 선배들 한 명 한 명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사번순으로 위계서열이 정해져 있어 사번이 높은 선생님들은 흔히 '올드', 3년 차 미만의 신입들은 '신규'라고 불린다.
내가 입사했던 병동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 오픈하면서 신규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덕분에 많은 동기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선배들에게는 1년 동안 '애기'라고 이름 불려졌다. 1년도 채 안 되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나 갑자기 일을 안 나오는 응사(응급 사직)가 많아 적응하기 전까지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애기 또는 신규 딱지를 뗄 때까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같다.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힘든 법인데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도 애기라 불렸던 그 시기에는 '프셉(프리셉터)'이라는 일대일 사수가 있었다.
프셉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유쾌하고 거리낌 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셉으로서도 좋았냐고 하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두 달간의 트레이닝 동안 퇴근 후 맥주를 사들고 와 혼술하고 잠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고 배우기에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배우는 수준인데 프셉의 속도는 달리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함께 트레이닝을 받는 다른 동기와 비교했을 때조차도 다른 동기는 프셉과 함께 라운딩을 돌고 있는 데 나는 이미 혼자서 라운딩을 돌고 있을 정도로 빠른 적응을 요구했다. 덕분에 일은 빨리 늘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컸다.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태움'이었다.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기도 하다. 나는 당할 일 없겠지 했는는데 지나고 보니 태움이었던 것이다.
내가 명백하게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 선배로부터 업무적인 지적, 훈계, 질책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닝을 받던 중 프셉으로부터 업무 미숙과 관련하여 “솔직히 시력 안 좋지? 눈 수술 잘못된 거 아니야?”와 같은 몰아붙이는 말을 면전에 대고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말까지 들었어야 했나 싶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라운딩을 돌며 배액관을 비우고 있었는데 프셉이 다른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면서 “우리 애가 좀 더뎌요” 라며 비아냥 거리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트레이닝을 받으며 점점 나 자신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 과정은 들어주는 법이 없었고 항상 결과로 나를 판단했다. “애기야 그럴 때는 네라고 하는 거야” 와 같은 말로 나의 의견을 묵살시켰다. 배우는 단계에서 마저도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트레이닝 한 달 차 간호사 파업이 시작되었다. 프셉을 포함해 독립하지 않은 간호사들을 제외하고 노동조합에 가입된 간호사들이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독립을 아직 하지 않은 나는 프셉없이 일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업 기간 병동은 입원 환자를 받지 않아 한산했다. 다른 병동에서 파견 온 수선생님과 병동 선생님도 계셨다.
한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너무 차분하게 일해서 일한 지 몇 년 된 선생님인 줄 아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있다 보면 다들 성격들이 변한다고 하셨다. 선생님도 나중에는 성격 변하시는 것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던 게 생각난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일할 때 성격이 꽤나 변한 것 같기는 하다. 이제는 감정 없이 일만 빠르게 처리하는 기계가 되었으니 말이다.
독립 전까지 마음속에 응사를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독립 후에도 말이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은 프셉이 계속 내가 못하는 것들을 봐주고 알려주었지만 혼자서는 어떻게 일하지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운 걸 정리하고 공부하는 일뿐이었다. 독립 후 혼자 일할 날을 생각하며 트레이닝 동안 배웠던 검사, 수술 간호에 대해 정리하고 시간대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실수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두었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 독립 하루 직전 퇴사한 동기를 눈앞에서 보았다. 독립 직전 책임감과 부담감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응사를 하고 만 것이다. 나 또한 그 시기를 겪어봤기에 그 친구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독립해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은 독립을 위해 쌓아온 두 달간의 트레이닝 시간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나에게는 더욱 히 두 달간의 트레이닝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혹독했던 트레이닝 기간을 생각하면 포기하지 말고 버텨야지라는 결심이 서기도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를 있기 해준 스파르타 프셉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나를 힘들게 해 줘서, 포기하지 않게 해 줘서 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면 힘든 날은 가고 좋은 날은 언젠가 온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자.